티토가 천우신조 끝에 1944년 베오그라드에 입성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어쩌다 물려받은 유고슬라비아를 건사하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전쟁으로 보낸 4년 많은 인명이 죽고 기반시설들은 파괴됐다. 자빠진 사회를 일으켜야 하는데 왕정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시스템을 거부하기로 했으니 뭐를 해도 새로 시작하는 셈이다.
처음부터 민족자결을 앞세우기로 한 만큼, 사회주의의 정체는 애초부터 얼추 정해져 있었다. 각 민족을 대표하는 공화국으로 구성된 연방제. 이것은 이미 전쟁이 한참 진행 중이던 1943년에 2차 AVNOJ를 거쳐서 결정된 일이다. 누가 맹주가 되서 지역의 헤게모니를 좌지우지 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구성민족들의 반발도 크게 잦아드는 효과가 나왔다.
그렇다면 누구를 구성민족으로 할 것인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는 이전 국체부터 인정을 했다. 마케도니아는 어차피 말도 다른 만큼 별도의 민족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스니아와 몬테네그로는 아리까리하다. 과연 여기를 하나의 별도의 민족공동체로 봐야할 것인가? 티토의 결정은 별도의 공동체로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보스니아 무슬림들도 내가 세르비아인인지 아니면 크로아티아인인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세개의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로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된다는 것. 무슬림 지도자들은 보스니아를 하나의 독립된 지역으로 봐야한다는 주장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다. 사회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유고슬라비아에서 이슬람 만큼 탈색된 종교도 없었지만, 이런 게 무슬림들이 오늘날까지 티토를 그리워하는 이유다.
각 민족의 숙원이 민족자결이라는 사실을 적절히 안배해서 만들어진 유고슬라비아. 지도만 봐도 소련과 같은 일괴암 사회주의를 강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느낌적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인의 일부로 봐야할지 아니면 별도의 민족으로 봐야할지 고민하다가 이것도 결국 별도의 민족으로 보기로 했다. 세르비아와 달리 몬테네그로는 한번도 오토만 터키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타고난 호전성에 산악에서 닦은 달음박질 실력이 있어서였는지 빨치산 중에는 유난히 몬테네그로 출신의 대장들이 많았다. 50만도 안되는 인구였지만, 대충 세르비아계로 퉁치기에는 무시못할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에 사는 모든 민족들이 다 구성민족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다. 코소보 알바니아인들과 보이보디나 헝가리인들 게다가 집시들도 있다. 별개 민족으로서의 자기주장이 없는 집시들은 그냥 넘어가고, 코소보와 보이보디나는 그냥 자치주autonomous
region로 봐주기로 했다. 집시들도 있었지만, 치지도외. 이렇게 해서 다섯개의 공화국과 두개의 자치주. 사회주의유고슬라비아연방은 이렇게 구성됐다.
유고슬라비아의 깃발, 공산당 아니랄까봐 붉은 별도 넣었다. 원래는 범슬라브주의를 상징한 깃발이었는데 어떻게 이게 사회주의유고연방의 깃발까지 됐다.
앞으로 싸우지 말고 같이 잘 살자는 의미에서 구호도 정했다. ‘우애와 단결’Bratstvo
i Jedinstvo. 이것이 유고슬라비아를 규정하는 키워드다. 고만고만한 도토리 키재기 민족들의 모임. 세르비아인들이 최대다수이긴 했지만, 전체를 합치고 보면 과반수가 안됐다. 어느 누가 형님행세 하는 순간 유고슬라비아는 흔들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줄타기의 명인 티토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헌법을 만들 때는 호기롭게 한마디도 집어넣을 수 있다: '각 공화국은 가입과 탈퇴의 자유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탈퇴할 수 있는지를 규정하지 않았다는 것이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