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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1일 월요일

구유고 음악 10 : 록에서 집시 뮤직까지 Goran Bregović

고란 브레고비치Goran Bregović는 보스니아 출신의 락/에트노 뮤지션이다.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2차대전 후 사회적 긴장이 완화된 틈을 타서 민족 간의 혼인이 성했다. 고란 브레고비치도 이런 예로, 아빠는 세르비아, 엄마는 크로아티아계다.

고란 브레고비치의 최근 모습. 90년대 유고 내전이후 고향이 보스니아를 떠나 세르비아에 눌러 앉기는 했지만 이기 팝Iggy Pop 등 서구 락스타에게 곡을 주고 크로아티아의 팝스타 세베리나Severina 등과 교류하는 등 국제적 지명도도 높다.  

20대 초반이던 70년대 말, 고란은 보스니아에서 친구들과 이런 저런 모색끝에 비옐로 두그메Bijelo Dugme(하얀 단추라는 뜻)라는 락 밴드를 결성했다. 80년대에 걸쳐 보스니아 뿐만 아니라 유고 락 음악 역사에서 다수의 기념비적 명반을 배출한 대표 밴드다. 초기작들은 딥 퍼플, 레드 제플린의 영향을 받은 정통 하드락 계열이지만, 80년대 중반부터 시류에 편승해서 뉴웨이브로 전환했다. 고란의 변신의 싹수는 여기서 부터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비옐로 두그메 전성기 때의 모습.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는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만나다 보니 경제적으로 피지는 못해도 유고슬라비아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비옐로 두그메 역시 가장 시골스런 곳에서 가장 세련된 음악을 추구한 밴드 되겠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보스니아에서 더 이상 밴드음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고란 브레고비치는 결국 세르비아에 정착하고 본령인 락음악에서 집시음악을 중심으로 한 에트노/월드 뮤직으로 방향을 틀었다.

왜 하필이면 집시음악인가? 모를 일이지만, 비옐로 두그메 후기 앨범에서는 집시노래 번안곡이 들어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고란 브레고비치의 집시음악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형성된 듯 하다.

영화감독 에밀 쿠스트리차와의 공동작업(집시의 시간dom za vešanje,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등 에밀 쿠스트리차 대표작의 음악은 모두 고란의 작품)을 통해 집시 뮤직에 기반을 둔 영화음악을 발표해서 그 성가는 일국을 넘어서 범유럽으로 퍼져 나간 바 있다.

영화 언더그라운드는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만가다. 헤쳤다 모였다를 반복하는 남슬라브족의 처지가 정처없이 유랑하는 집시들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그랬을까? 아니면 유고 내전이 한창 진행되던 가운데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혼혈로 태어난 자신의 처지가 부질없이 느껴져서 그랬을까? 적어도 90년대에 들어 사방에서 고립된 세르비아인들에게는 고란표 집시음악이 상당히 깊은 울림을 가지고 다가왔던 것 같다. 고란은 음악적 방향을 바꾼 90년대 이후 다른 나라 민족음악인(속칭 월드뮤직)들과의 교류를 통해 음악적 지평을 넓혔지만,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집시 음악만큼은 벗어나질 않았다.

고란 브레고비치작 집시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완급 조절이다. 하드 드라이브 일색의 집시음악에 고란은 긴장과 이완을 불어 넣었다. 여기에 주류적 대중감성, 모던 프로덕션 기술로 사운드를 윤색하니까 정말로 성속聖俗, 귀천貴賤이 변증법적으로 결합된 잘된 음악이 나왔다.

고란 브레고비치의 섹스Sex. 원래 음반에서는 집시 음악의 왕 샤반 바이라모비치의 음성이 수록됐다. 샤반의 다른 음반과 비교해 보면 프로듀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목이 좀 거시기 하긴 한데, 은밀하게 밀고 당기는 듯한 섹스의 정조가 잘 표현된 것 같다.

그러나 허다한 작품 가운데에서 고란 브레고비치의 최대 히트곡은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집시의 시간'(1989) 사운드트랙으로 수록된 '에데를레지'Ederlezi다. 90년대 세르비아에서는 시대의 송가처럼 불리워 졌다. 

전통적 집시 브라스밴드의 반주를 바탕으로 한 에데를레지. 2005년 이태리 아시시Asisi 성프란시스코 바실리카에서 개최된 크리스마스 라이브 현장이다.  

에데를레지는 발칸의 종교축일 '聖조지의 날'Đurđevdan(Saint George's Day)를 기리는 집시들의 노래다. 이 날을 전후로 사람들은 강가에서 몸을 씻고 새끼양 통구이를 먹는다. 종교축일의 틀을 빌렸지만, 실제 주민들에게는 다가오는 봄을 기리는 축제날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런지 발칸의 주민들은 카톨릭, 정교, 무슬림 할 것 없이 이 날을 기념했다. 때문에 학자들은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 이교도의 축제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한다.

이보 안드리치와 더불어 보스니아 대표문호 메샤 셀리모비치Meša Selimović의 대표작 더비쉬와 죽음Derviš i smrt은 바로 이 성조지의 날부터 스토리가 시작된다. 이슬람 성직자Derviš인 주인공이 밤중에 길을 걸어가면서 성조지의 날을 맞는 주민들을 보면서 제도화된 종교적 순수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불결함과 불쾌함을 느낀다. 남과 여의 원초적 마그네티즘으로 형성되는 생명이란 순수와 고결을 숭배하는 화석화된 기성종교로는 참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에데를레지는 종잡을 수 없는 봄 또는 생명의 시작을 찬미하는 찬송이지만 그 가사는 애잔하기 그지없다.
Ederlezi 
All my friends are dancing the oro Dancing the oro, celebrating the day
All the Roma, mommy
All the Roma, dad, dad
All the Roma, oh mommy
All the Roma, dad, dad
Ederlezi, Ederlezi
All the Roma, mommy
All the Roma, dad, slaughter lambs
But me, poor, I am sitting apart
A Romany day, our day
Our day, Ederlezi
They give, Dad, a lamb for us
All the Roma, dad, slaughter lambs
All the Roma, dad, dad
All the Roma, oh mommy
All the Roma, dad, dad
Ederlezi, Ederlezi
All the Roma, mommy





2013년 6월 30일 일요일

구유고의 집시 4 : 영화 속 집시 2 - Anđeo Čuvar

현재 유럽에서 가장 큰 사회문제의 하나는 집시들의 앵벌이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집시들의 구걸이야 옛날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이런 일들이 '조직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앵벌이가 산업화되자 당연히 인신매매, 아동학대 등의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 집시들이 많이 모여사는 구유고 지역이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리가 없다

이 문제를 작심하고 들여다본 유고 영화가 '수호천사'Anđeo čuvar(1987)다.

스토리는 이렇다. 영화의 초두는 집시 마을 상공에서 천천히 마을, 특히 주인공 집시네 집으로 하강하는 부감샷으로 시작한다. 그야말로 수호천사의 하강을 보여주는 샷이다. 그럼 수호천사는 누구인가?

신문기자 드라간Dragan은 집시들의 인신매매 현황을 취재하다가 현장에서 적발된 집시아이들 중에서 샤인Šajn이라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사회사업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음악(아코디온)에 재능이 있다는데, 다년간의 학대를 겪은 탓인지 맘을 좀처럼 열지 않는다.

신문기자 드라간Dragan. 1936년생 마케도니아 출신의 류비샤 사마르지치Ljubiša Samardžić가 역할을 맡았다. 슬라브인 답게 2m에 가까운 장신이다. 덕분에 상대역으로 나오는 아이들이 훨씬 작아보인다.

샤인Šajn 역할을 맡은 야쿱 암지치Jakup Amzić. 이상한 일은 집시들은 주연을 맡아도 영화배우를 업으로 삼는 일이 거의 없다. 영화 속의 이 아이는 지금은 30대 후반 나이가 됐을 텐데, 후속작도 없고 뭐하고 지내는지도 모른다.

어찌어찌 샤인을 집으로 보내놓고, 아무래도 마음이 찜찜한 드라간. 잘 사는지 집시 마을을 방문해 보기로 한다. 갔더니 왠 걸. 경제력 제로 아빠가 다시 샤인을 '조직'에 팔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엄마도 얼마전에 죽고.. 기왕에 돋은 궁금증/측은지심으로 드라간은 베니스까지 샤인을 찾아 나선다.

이런 애 본 적있니? 당연히 애들은 모르쇠. 

드라간은 천신만고 끝에 경찰에게 잡힌 샤인을 다시 찾아낸다. 밥(+술)도 사주고 놀이동산도 같이 가주는 드라간에게 샤인은 마음을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드라간의 자동차 뒷자석에서 여자친구와 만나는 샤인. 창녀로 일하는 같은 처지의 집시소녀다.  

계속되는 '조직'의 학대를 참지 못한 샤인, 결국 드라간과 같이 세르비아로 도망친다. 이제 좀 제대로 된 사회시설에 샤인을 의탁할 생각을 하던 드라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샤인은 참지못하고 몰래 고향집으로 간다.

다시금 샤인을 찾으러 집시마을을 방문한 드라간. 그런데 샤인의 태도가 영 삐딱하다. 알아보니, 아빠는 감옥에 갔고 어린 동생들만 집에 남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샤인의 분노는 왜 드라간이 엄마의 죽음을 자기에게 알리지 않았냐는 데서 비롯된다.  집안을 챙기기 위해서는 다시 이태리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샤인의 퉁명스런 대답이다.

샤인의 쌀쌀한 태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드라간의 '영업 방해' 사실을 알아챈 '조직'이 나선 것이다. 결국 드라간은 마을에서 '조직'에 죽음을 당하게 된다.

영화는 결국 '수호천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관람객에게 던진다. 드라간의 선의는 무시할 수 없지만, 그가 샤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고아원에 의탁하는 것 뿐이다. '조직'의 작태는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지만, 어쨌거나 덕분에 샤인의 동생들은 연명할 건덕지가 생겼다. 그렇다면 '수호천사'란 선의로 샤인을 구하려다 목숨까지 잃은 드라간인가? 아니면 인륜에 합당하지는 않지만 집시들에게 살 구석을 마련해주는 '조직'인가? 물론 영화는 질문만 할 뿐. 대답은 관객의 몫이다.

이 영화가 나오는 1987년, 유고슬라비아는 앞서 소개한 '깃털수집상'이 나온 60년대와는 상당히 판이한 상태에 있었다. 티토도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어지러웠다. 무엇보다 민족주의가 사회 여기저기서 파열음을 내고 있던 때다. 여느 사회주의 국가에 비해서도 개방적이었던 유고슬라비아에서 집시들의 앵벌이가 고질화되던 시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성조지의 날'Đurđevdan 축제일에 집시들이 냇가에서 몸을 씻는다. 아무리 무법해 보여도 집시들 나름의 사회적 질서와 제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집어 넣은 장면이 아닐까 싶다. 어두워서 잘 안보이지만,  영화의 마지막 샷에는 쓰레기 더미 위에 쓰러져있는 드라간의 모습도 비춘다. 구유고 집시음악의 거두 샤반 바이라모비치가 이 영화에서 샤인의 아빠 역할을 맡고, 메인테마Sajbija까지 불렀다. 

이 같은 문제는 EU가 들어선 오늘날이라고 특별한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이에 집시들이 많은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까지 EU로 가입한 만큼, 집시들의 휴먼 트래피킹은 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간 듯 하다. EU가 풀어야할 난제다.




2013년 6월 25일 화요일

구유고의 집시 3 : 영화 속 집시 1 - Skupljači Perja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다수 집시영화들이 나와서 국제무대에서 각광을 받았다. 1967년작 '거위털 수집상'Skupljači perja은 깐느 그랑쁘리 수상작이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영화감독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urica 역시 집시들을 소재로 '집시의 시간'Dom za vešanje (1989)으로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이것 말고도 Anđeo Čuvar(1987), Crna Mačka Beli Mačor(1998), Ciganska Magija(1998) 등 (구)유고산 집시 영화는 허다하고 반향도 크다.

평론가들은 이들 영화가 집시를 소재로 하고는 있지만, 집시에 의한, 집시를 위한, 집시의 영화가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외부자의 시각으로 외부자를 위해 만들어진 집시 영화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 영화들에 대해서는 서구 중심부의 이목을 끌기 위한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라는 비난도 있다.

어떻게 보면 주변부의 비애다. 우리나라도 해외에서 각광을 받으려면, '만다라', '서편제'처럼 서구의 이국취향을 살려주거나 아니면 '섬', '올드보이'처럼 폭력적으로 충격적이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어찌 됐건 집시들을 서커스 곰처럼 부린 것도 아닌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랴.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유고슬라비아처럼 내부사회 문제를 까밝힌 나라도 많지 않았다는 것도 생각해 줘야 한다. 집시에 의한 집시를 위한 집시의 영화는 집시들이 직접 만들면 된다.

유고슬라비아 영화를 세계무대에 제대로 선보인 첫번째 영화가 바로 '거위털 수집상'Skupljači perja(영어로 Feather Gatherers)이다. 영어 제목은 '나는 행복한 집시를 만났네'(I Even Met Happy Gypsies)다. 왜 이런 차이가?  Feather Gatherers라는 직업 자체가 서구에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행복한 집시들을 만났네'는 집시들의 송가 젤렘 젤렘Djelem Djelem에 나오는 가사의 한 구절이다. (젤렘 젤렘에 대해서는 링크 참조)

영화 포스터.

영화 내용은 이렇다. 물론 스포일러 주의다.

무대는 보이보디나Vojvodina. 예전에 헝가리 땅이었다가 1차대전으로 세르비아에 귀속된 지역이다. 세르비아 말고도 다양한 민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는 집시들의 언어인 로마니, 세르비아어 말고도 헝가리어 등 다양한 언어가 등장한다. 때문에 세르비아에서도 자막없이는 이 영화를 이해하기 힘들다..

주인공인 집시 보라Bora는 인근 농가로부터 거위 깃털을 수집해서 파는 장사꾼이다. 젊고 힘도 세다보니 술-도박-여색의 3박자에 거칠 것이 없다. 이미 자기보다 연상의 마누라가 있지만, 나쁜남자답게 대드는 마누라에게는 구타가 약이다.

보라. 짐승남이라고 이마에 쓰여있다. 

보라는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시 처녀 티사Tisa를 좋아한다. 동업을 하는 미르타Mirta의 의붓딸이다.

보라가 좋아하는 티사. 실제 집시인 고르다나 요바노비치Gordana Jovanović가 맡았다. 영화를 찍을 때까지 전문배우가 아니었다.

티사는 관습과 부모의 주선에 따라 동네 어린애에게 시집가지만, 신랑이 너무 어린 바람에 합방에 실패. 결혼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보라는 이 때다 싶어 미르타에게 티사를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 하지만 미르타는 이를 거절한다. 왜냐. 그 스스로가 티사한테 흑심이 있었거든.

딸을 다오. 싫다 새꺄.

아니나 다를까. 티사를 겁탈하려던 미르타, 마누라가 말린 덕에 미수에 그친다. 티사는 도망과 곡절 끝에 보라와 만나 교회당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다. 이에 빡친 미르타, 보라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그 사이 티사는 보라의 마누라가 준 돈으로 베오그라드로 도망갔다가 이도 저도 못하고 거리에서 겁탈만 당한채 결국 다시 미르타에게 돌아온다.

티사를 찾아다니던 보라, 티사가 다시 미르타에게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복수에 나선다. 깃털 수북한 작업장에서 만난 두 사람. 격투 끝에 미르타는 죽고, 보라는 도망에 나선다. 마지막 장면은 유고슬라비아 경찰들이 집시 마을에서 보라를 탐문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집시들은 공권력의 사법정의 구현노력에 대해서는 시종 모르쇠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 일곱살 쯤 되보이는 집시 뽀이가 담배를 피면서 탐문 중인 유고슬라비아 경찰들을 노려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여기는 신경 끄는 게 좋아'라고 말하는 듯 하다. 

영화감독 알렉산다르 페트로비치Aleksandar Petrović는 당시 유고 영화계 블랙 웨이브의 기수였다. 티토 스스로가 영화광이다 보니 영화산업을 적극 후원했다. 덕분에, 유고 영화계에서는 한동안 '배달의 기수'류의 영화가 판을 쳤다. 페트로비치는 이 같은 조류에서 벗어나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과감하게 드러냈던 사람이다.

주연배우로 보라 역을 맡았던 사람이 유고산 국제스타 1호 베킴 페흐미유Bekim Fehmiu다.

추레한 모습을 벗어던진 베킴 페흐미유. 초기 헐리우드 진출작으로 캔디스 버겐Candice Bergen과 공연한 Adventurers(1970) 만 안 망했어도, 우리나라에까지 알려질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시가 아니라 코소보 알바니아계인 이 사람은 이 영화를 통해 국제적 스타덤에 올랐다.  그런데 이 양반, 잘 살다가 80년대 중반 이후 코소보 알바니아계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시작되자 베오그라드에서 사는 것이 불편해졌다. 1987년 결국 민족주의 정책에 대한 항의표시로 연극 공연 도중에 무대를 박차고 나간 뒤, 다시는 배우로 복귀하지 않았다. 2001년 잠깐 인터뷰에서 드러난 그는 유고슬라비아의 붕괴에 대한 지독한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렇게 은둔생활을 지속하다가 2010년 76세의 나이에 베오그라드 자택에서 권총자살을 택한다. 아내에게 적어놓은 편지에서 그는 '암만 생각해도 인생이 의미가 없어서...'라고 적었다. 정치가 애꿎은 사람 하나 잡은 셈이다.

1951년생의 또다른 주연 고르다나 요바노비치는 그 이후 딱히 출연작이 많지 않다. IMDB에서는 '수호천사'에서도 출연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1967년 그러니까 이팔청춘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만 보여주고 주섬주섬 사라졌다. 1999년에 죽었으니 오십이 채 안된 나이다.

어쨌거나 이 영화에는 가정폭력, 구타, 도벽, 주벽, 제도에 대한 거부 등 집시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런 가운데 영화제목을 '행복한 집시들 만났네'라고 붙였으니, 참 역설적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60년대는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전성기다. 경제적으로 풍족했고, 미국-소련한테도 꿀리지 않는 정치적 위상을 누리고 있었다. 이 영화는 그 거칠 것 없는 유고슬라비아에 어떤 장애가 도사리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집시들의 앤썸, 젤렘 젤렘은 환청과도 같이 지속된다.

영화 속의 젤렘 젤렘 노래부르는 장면. 집시 여가수 역을 맡아 노래를 부르는 올리베라 카타리나Olivera Katarina는 당시 유고 최고의 (섹시) 스타였다.  베킴 페흐미유의 자기파괴적 야성미가 잘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구유고의 집시 2 : 어떻게 살 것인가

2차대전을 맞아 집시들은 유태인들과 더불어 홀로코스트를 겪었다. 발칸지역 역시 크로아티아 우스타샤와 독일 나찌 점령군은 집시와 세르비아인들을 개잡듯 잡았다. 2차 대전 중 유태인들은 6백만이 죽었다고 하는데, 집시들에게는 그 수를 헤아려 줄 사람도 없다.

이 같은 참상은 결국 스스로가 정치세력화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집시들이라고 당하고만 있을까.

세르비아의 집시 쟈르코 요바노비치Žarko Jovanović는 2차대전을 맞아 일족의 대부분을 수용소에 잃었다. 티토의 빨치산에 합류하여 목숨을 보전한 쟈르코는 1964년 파리로 이주한다. 그는 1971년 세계최초로 런던에서 전세계집시회의Romani Congress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1978년 2차 제네바 회의 당시에는 '문화부 장관'에 추대됐다. 스스로는 일국의 장관이 아니라 전세계 (집시들의) 장관이니 훨씬 격이 높다고 주장했다.

1971년 회의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집시깃발이 공인되고, 더 나아가 쟈르코 요바노비치가 만든 집시들의 앤썸, 젤렘 젤렘Đelem Đelem(이것도 지역마다 고유한 표기 방식에 따라 Djelem Djelem, Gelem Gelem, Jelem Jelem, Dzelem Dzelem 등 허다한 방식으로 표기)이 채택됐다는 것이다. 이제 국기國旗에 국가國歌가 생겼으니, 모든 게 거의 이뤄졌다. 국가國家만 만들면 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집시들의 깃발. 깃발 정중앙에 인도에서 모티브를 따 온 바퀴문양이 그려져 있다.  원래 만들어진 것은 2차 대전 전의 일인데, 1971년에서야 전세계 집시들에게 공인됐다고 한다. 

젤렘 젤렘. '간다 간다' 또는 '유랑한다'라는 뜻의 로마니어 단어라고 한다. 원래 있던 멜로디에 요바노비치가 가사를 붙였다. 집시 가수 또는 밴드들 치고 이 노래를 부르지 아니한 사람이 없다. 민족가, 국가 또는 앤썸이라고 한다면 집단의 뜻을 담은 힘찬 노래여야겠지만, 이 노래에는 오히려 슬픔과 우수가 서려 있다. 국가로써는 부적격이다.

쟈르코 요바노비치가 직접 부른 젤렘 젤렘. 요바노비치는 파리에서 발랄라이카(러시아 3현악기) 연주자로 활약했다. 원래는 '일어서라 집시여'Opre Roma라는 보다 선동적인 제목을 붙이고 싶어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서 나온 가사를 소개하자면 대충 이런 뜻이라고 한다.

"먼 길을 가다 행복한 집시들을 만났네. 어디서 오는가 집시여. 텐트를 짊어지고 행복하게 길을 가네.... 내 원래 가족이 있었으나, 검은 군단이 잡아 죽였다네. 가자, 전세계 집시들이여. 집시들에게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네. 일어나라 집시여. 지금 행동한다면 더 높게 일어서리.."

검은 군단Black Legion이 가족을 죽였다는 내용은 요바노비치의 개인적 트라우마에서 나온 것이다. 나찌 친위대,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모두 검은 색 옷을 유니폼으로 입었거든. 2차대전 당시를 생각하면 집시들에게는 상당히 보편적 호소를 담고 있다.  그러나 집시들이 반드시 이 가사에 천착하고 있지는 않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하지만 어쨌거나 젤렘 젤렘 만큼은 집시들의 전폭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다고 봐도 될 듯 하다.

세르비아의 집시뮤직의 왕 샤반 바이라모비치가 쏘울풀하게 부른 젤렘 젤렘. 가사는 첫소절을 제외하고는 요바노비치와 일치하지 않는다. 샤반 바이라모비치 목소리에 곁들여 나오는 화면은 1987년 유고 영화 '수호천사'Anđeo Čuvar의 장면으로 구성된 것이다. 샤반 바이라모비치도 이 영화에 출연했다. 

어쨌거나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동유럽 집시의 본산 루마니아에서 집시들이 정당도 결성하고 케이블 채널도 보유하고 있다고들 한다. 합목적적 정치 활동을 집시들이 주도하기 시작한 것은 공산주의 붕괴 이후 최근의 현상이다. 이런 점에서 과거와는 달라지지 않겠는가를 조심스럽게 점쳐보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의 차이가 너무 큰것도 사실이다.

세르비아나 마케도니아에서 집시 뮤지션들이 크게 성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나머지 나라들은 그렇지 못하다. 자기 앞가림이 급하다 보니, 집시들에게까지 돌아갈 에너지와 신경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서구 선진국들이라고 크게 다를 것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거의 도찐개찐 아닐까 추론해본다.

보스니아 투즐라에서 본 노래하는 집시. 어린나이지만 보스니아의 오랜 장르음악인 세브다흐를 곧잘 소화했다. 집시들에게 동냥과 거리공연 사이의 경계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무반주인데다 자세로 보아 아무래도 동냥이라고 봐야할 듯....

집시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또는 집시들을 어떻게 사회 속에서 제대로 된 구성원으로 편입시킬 것인가. 구유고 연방 출신 나라들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인듯 하다.




2013년 6월 20일 목요일

구유고의 집시 1 : 어떻게 사나

발칸이 순수한 민족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남슬라브계가 주류를 이루는 구유고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도 블라흐Vlach, 몰락Morlach 등의 연원을 알기 어려운 종족들이 기록에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명맥을 잇는 소수민족이 있다면 집시들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집시를 '낭만적으로' 그린 서구의 문학, 음악, 미술 작품들이 많이 소개됐고, '집시여인' 등과 같은 노래가 히트를 하기도 해서 집시에 대한 환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실제로 이들을 맞부닥치고 보면 '꾀죄죄'라는 단어가 머리속 단어창에 뜬다. 신호 대기중인 자동차 앞에서 구걸하거나, 괜찮다고 하는데도 굳이 앞유리창을 닦는 집시들을 보면 남루 그자체다.

발칸에서 집시들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터키 등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롬Rom, 로마Roma로 부른다. 집시 말로는 '인간'이라는 뜻이란다. 구유고 지역에서는 이들을 찌가니Cigani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독일의 찌고이네르Zigeuner와도 어원이 똑같다. 불가촉Untouchable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왔다.

1906년 경 세르비아의 집시 가족. Augustus Sherman이 찍은 사진이다. 

현재 서유럽에 비해서는 동유럽이 집시인구 비중이 높고, 동유럽에서 집시들이 가장 많은 나라는 루마니아다. 그럼 구유고 지역은? 센서스 상으로 합쳐놓으면 30만 정도 사는 것 같은데, 이들이 워낙 제도를 등지고 살고 있다보니, 실제 인구는 이것보다 몇배는 크지 않을까 생각들 하고 있다. 구유고 연방 중에서는 세르비아가 가장 많은 집시인구(센서스 인구로 10만 이상)를 보유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Romani people by country 참조]

구유고를 포함해서 발칸에서 집시들이 많다는 사실은 발칸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주는 부분이 있다. 그 만큼 사회가 빈틈이 많다는 것, 집시를 포함한 사회생태계가 있다는 것, 비록 천대는 하지만 나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들 집시 종족은 주로 오토만 터키 지배 하에서 가장 더럽고, 어려운 일들을 맡아주는 해결사로 살아왔다. 특히 우리에게도 알려진 바, 끝이 뾰족한 장대를 인간의 항문에 집어 넣어 척추나 내장을 흟고 들어가는 이 잔인한 형벌을 집행하는 것은 주로 집시들의 몫이었다. 안드리치의 소설 '드리나 강의 다리'에서는 이 장면이 소상히 소개된다.

이 외에도 대장장이, 신발장이 등 소소한 공예 등을 생업의 기반으로 삼았고, 말 사육, 거위 치기 등이 주요한 수입원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런 산업이 사양길로 들어선 지금,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쓰레기 처리 등이 주요 직종으로 변한 듯 하다. 자그레브에서는 집집 마다 폐가구 등 크고 무거운 고형폐기물을 한꺼번에 집밖에 내 놓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이면 어김 없이 집시들이 나타나서 어디론가 물건들을 실어간다. 아예 쓰레기 하치장이 주거지역으로 변한 경우도 보인다.

때에 따라서는 집시들이 인근 공장에 취직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루마니아 출신의 걸출한 집시 브라스 밴드인 팡파레 쵸카를리야Fanfare Ciocarlia의 경우, 독일 음반 제작자가 발견하기 전까지 인근 섬유공장 노동자들이었다. 실제로 세르비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 따르면, 집시들이 사회적인 고정관념(도둑질, 나태 등)과 달리 일을 곧 잘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기 힘들다보니, 도시에서 구걸에 나선 집시들도 많다. 아동들을 이용한 앵벌이가 거의 (수출)산업수준으로 자리잡았고, 이로 인한 인신매매 등이 집시들이 많은 나라의 사회 문제로 떠오른 바 있다. 집시들을 어떻게 현대사회의 일원으로 자리잡게 할 것인가는 구유고 및 발칸 지역의 주요한 이슈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집시하면 음악이다. 집시가 사회적으로 가장 성공할 수 있는 직종이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 음악계에는 재즈 전설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t를 비롯해서 집시출신 기라성들이 배출됐고, 이들 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프로덕션 하우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은 길거리 밴드로 특화한다. 세르비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등지에서는 집시들을 천대하면서도 집시의 음악에 대해서는 이를 자신의 음악적 자산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오늘 날 구유고 지역에서 집시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세르비아의 사진기자 Ivan Aleksic  참조.]

1940년대 찍은 발칸 집시 밴드의 모습. 관악기가 오토만 군악대가 쓰다버린 쓰던 터키식 나팔 Zurna이다. 이게 나중에는  서양 목.금관악기로 바뀐다. 

어쨌거나 신기한 것은 이리 깨지고 저리 쫓겨다녀도, 집시들은 아직도 자기 언어와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잡풀들이 이 바람에 휩쓸리고 저 물에 쓸려나가면서도 지천에 깔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나. 만약 어느 민족이든 생존이 지상과제라고 한다면, 이 특이한 민족 역시 역사의 승자라 아니할 수 없다.

자기 나라도 없이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그들 스스로는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는다는 피해의식도 없고, 뭘 빼았겼다는 억하심정으로 다른 민족을 곤란케하는 법도 없다. 기록하는 버릇이 없는 이들 입장에서는 역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국외자의 입장에서 낭만화하기 딱 좋지만, 이 역시 이들의 비참함을 생각하면 속없는 생각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아직도 집시들이 스스로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전히 모른다.




2013년 6월 9일 일요일

구유고의 음악 5 : King of Gypsy Music

먼저 음악부터..

샤반 바이라모비치가 부른 '풍뎅이'Bubamara. 화면은 이 노래가 OST로 활용된 에밀 쿠스투리차의 1998년작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Crna Mačka Beli Mačor의 장면을 모아서 만든 동영상이다. 샤반 바이라모비치는 이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다고 한다.

또 집시 음악이다. 발칸 집시 음악은 브라스 밴드로 유명하지만, 실력있는 보컬 들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가수로는 마케도니아 출신의 에스마 레제포바Esma Redzepova와 세르비아의 샤반 바이라모비치Šaban Bajramović를 들 수 있다. 오늘은 샤반 바이라모비치다.

샤반 바이라모비치. 단발머리 청년 당시, 그러니까 젊었을 때 모습이다. 찰슨 브론슨의 향취가 느껴진다. 

샤반 바이라모비치. 1936년 세르비아 남부 니쉬Niš에서 태어나서 2008년 죽었다. 대부분의 집시들이 그렇지만, 학교 공부는 설렁설렁 초등학교 중퇴, 길거리에서 음악을 배웠다. 19살 되던 해 군대 징집영장이 나왔지만, 연애에 빠져 병역을 회피하는 바람에 어찌어찌 '탈영'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판사 앞에서 어설픈 소리하다가 3년이면 끝날 형량이 5년반까지 늘어났다. 그래서 끌려간 곳이 '벗은섬'Goli Otok(영어로 옮기면 Naked Island. 정치범/흉악범 수용소로 유명)이다.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굴러먹던 집시생활, 수용소에서도 잘 버텼다. 재소자 축구시합에서는 '흑표범'으로 이름을 날리고, 밴드에도 들어 루이 암스트롱 등의 음악을 연주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쓰고 읽는 법도 익혔다고 하니, 교도소가 그에게는 학교가 됐다. 출소 이후 여기 저기 카페에서 노래를 하다가 1964년 첫 음반을 내고, 그 길로 엉겁결에 스타가 됐고, 그렇게 50여년 가수 인생에서 20여장의 앨범과 50장의 싱글을 발매했고, 집시음악의 왕kralj romske muzike라는 칭호를 얻었다. 곁가지로 수호천사Anđeo Čuvar(1988), Ciganska Magija(1998) 등의 영화에도 배우로 출연했다.

과거 유랑악단이나 다름없는 생활이다. 음반, 공연도 있지만, 결혼식, 피로연 등이 집시밴드의 주수입원이다. 로컬 카페가 우리나라와 같은 '업소' 역할을 했다.

예술가 답게 생활도 방탕했다. 노름.술.담배.여색 등. 성격도 괴퍅해서 정해진 스케줄을 따르지 않고, 아무때나 마음대로 훌쩍 사라졌다. 공연을 펑크내서 수소문해서 찾아보면 누구집 결혼식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를 발견하기도 했다. 노래를 하지 않는 동안은 내내 불평불만이었다. '같이 작업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평판이 따라다녔다.

위키에 따르면 그는 700여곡을 작곡했다(확실하지 않은 부분이다. 자기 노래라고 주장한 노래가 원래부터 집시들 사이에서 불리워졌던 것도 있고, 같은 노래에 제목이 달리 달린 경우도 많다). 하지만, 축재의 방도를 딱히 아는 것도 아니고, 유고슬라비아 시절 내내 저작권이 잘 보호되지 않아서 말년에는 지독한 빈곤에 시달렸다. 그가 죽은 다음에 후배 뮤지션들이 위로 삼아 '고인은 저작권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라고 세속에 초연한 영웅인 듯 그를 기렸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고란 브레고비치Goran Bregović 같은 동료음악인을,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urica 같은 영화인을, 특정 음반제작업자를 틈만 나면 욕했다. 허락 또는 보상 없이 자기 노래를 쓴다는 이유로. 하지만 정작 그는 쟁송으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살아온 배경 때문이었을까. 집시가 남에게 소송을 건다는 게 허망하게 느껴졌을지, 아니면 남에게 뒤통수를 맞았던 경험이 많아 변호사들에게 의존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샤반 바이라모비치의 또 다른 노래 '깡총깡총'Opa Cupa. 헤르체고비나의 세브다흐 장르 밴드인 '모스타르 세브다흐 리유니언'Mostar Sevdah Reunion과의 공연 장면이다. 샤반은 이들과 2002년과 2006년 콜라보 앨범을 만들었다.

그의 음악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냥 뭉뚱그려서 '집시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멩코와 같이 토만 터키의 영향 때문인지 오리엔탈 풍은 확연하다. 그럼에도 불구, 그의 노래는 발칸 세브다흐Sevdah 장르에서부터 재즈, 삼바, 탱고 등으로의 다양한 확장성을 가진다. 90년대 까지 그의 음반은 난삽해 보이는 아코디온 반주에 싸구려 씬서사이저까지 곁들어져 음악적 이디엄 자체가 우리에게 매우 낯설게 들린다. 게다가 프로덕션 밸류도 낮아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뽕짝 메들리 판들과 커다란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낮은 질의 레코드를 커버하고 있는 '쏘울'이 있었다. 창법으로나 태도에 있어서나 우리나라 뮤지션 중에는 '봄비'를 히트시킨 박인수씨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세르비아어보다 집시들의 언어인 로마니어로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그 스스로가 언어상의 장벽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노래는 '쏘울'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에 가사를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한번은 티토 앞에서도 노래를 불렀는데, 티토가 집시의 언어를 (일부)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 크게 감명을 받기도 했다.

마지막 음반 Romano Raj에 수록된 '백장미'Bele Ruže. 프로모션 화면이지만 집시의 음악을 대중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음반에서는 이 오랜 히트곡을 장고라인하르트 풍의 집시 재즈로 풀어냈다.

그에게 다행한 점이 있다면 성격상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와 콜라보하고 싶어하는 실력있는 후배 뮤지션들이 따라 붙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2000년대 이후 나온 음반들은 음악적 전성기를 지난 상황에서 발매됐음에도 불구하고 하나 같이 수작들이다. 특히 2006년 세르비아 재즈 밴드 '자발적대장간협회'Dobrovoljno Kovačko Društvo와 공동으로 만든 마지막 앨범 '집시의 천국'Romano Raj(PGP RTS 발매)에서는 재즈, 삼바, 레게, 탱고 등의 주법에 맞춰 자신의 히트작들을 다시 불렀는데, 장르가 바뀌었음에도 마치 자기옷 입은 마냥 편안하게 느껴진다. 죽음을 2년 앞둔 70세 고령에 녹음했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놀라운 확장성, 놀라운 적응력, 놀라운 유연성이다. 가히 '백조의 노래'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명반이다.

백조의 노래. '집시의 천국'Romano Raj. 재즈, 삼바, 레게 등으로 풀어낸 자신의 히트곡 모음집이다.  이 음반에 등장하는 음악들은 모두 세계 구석구석에서 비루하게 시작된 음악들이다. 원래 예술을 비루한 현실을 더욱 숭고한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인간적 작업이라고 한다면, 샤반 바이라모비치는 천상 예술가다.





2013년 5월 30일 목요일

구유고의 음악 4 : Balkan Gypsy Brass Band

발칸반도에 집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4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일부는 서유럽이나 러시아 지역으로 지속적으로 퍼져나갔지만, 다수는 아직도 발칸에서 살면서 사회생태계의 최하층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과 살을 맛대보지 못한 우리 입장에서, 집시 하면 생각나는 것은 역시 음악이다. 이들의 음악은 찌고이네르바이젠, 헝가리 무곡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서구 클래식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줬으며, 후대에는 장고 라인하르트를 비롯해 기라성 같은 집시 뮤지션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발칸지역 집시 음악 역시 같은 궤적에 있다고 봐야 겠지만, 가장 눈에 띠는 점은 집시 브라스 밴드의 존재다. 이들 음악은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urica 감독의 '집시의 시간'Dom za vešanje,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등을 통해서도 소개된 바 있다. 이들 밴드는 중요한 축제 혹은 애도의 계기 때마다 등장해서 분위기를 띄우거나 가라앉히는 역할을 했다. 아무래도 음악을 듣는 것이 축제 때가 많다보니 다수의 노래에 축제와 흥분의 톤이 내장되어 있다. 

구유고에서 활동 중인 집시 브라스 밴드 중에서 가장 많은 각광을 받는 보반 마르코비치 오케스트라Boban Markovic Orkestar의 모습. 리더 보반의 아들 마르코Marko도 14살때 학교를 때려치고 가세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브라스 밴드인가? 동유럽 집시하면 바이올린 아녀?

몇가지 이유가 있다. 오토만 터키는 서구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앞서 전문군악대Mehter를 운영했다. 14세기부터 오토만의 서진이 본격화되면서 이들의 악기(주로 나팔과 북)가 이런 저런 경로로 집시들 수중에 들어갔다. 19세기 세르비아가 독립하면서 이들의 악기는 서양식 나팔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근대적으로 조직된 세르비아 군대에서도 군악의 취주를 담당한 계층은 집시들이었다. 더 나아가 척박한 데서 거친 일을 하다보니, 손이 거칠어져서 현악기보다는 관악기 쪽이 이들에 맞았다는 설명도 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브라스 밴드가 많다 보니, 세르비아에서는 오늘 날도 구챠Guča에서 매년 8월 마다 트럼펫 축제가 열리는데, 이게 왠만한 서유럽이나 미국 록 페스티발 저리 가랄 정도로 규모가 꽤 크다. 

이들 음악은 이것 저것을 섞은 잡탕처럼 보이지만, 족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19세기 발칸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초첵Čoček 장르의 주요담지자들이다. 터키식 오리엔탈 멜로디, 강력한 비트(4/4, 7/8, 그리고 집시 9이라고 불리는 9/8박) 등이 주요 특징이다. 댄스비트의 경우 벨리댄스와도 결부되기도 한다.

구유고 지역에서 가장 인기있는 집시 브라스 밴드를 꼽으라면, 단연 세르비아의 보반 앤 마르코 마르코비치 오케스트라Boban & Marko Marković Orkestar다. 다음 영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10년 구챠 트럼펫 페스티발에서 이들의 라이브 장면은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집시 브라스 음악이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보반 앤 마르코 마르코비치 오케스트라. 연주곡은 쿠스투리차 영화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칼라시니코프Kalašnjikov다. 브라스 밴드 역시 여느 록밴드 못지 않게 사람들을 미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이것이 집시 브라스 밴드의 전통적 기능이었을 것이다.


약간 발칸의 궤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최근에 뜨는 집시 밴드로는 팡파레 초카를리아Fanfare Ciocărlia를 빼 놓을 수가 없다. 루마니아 집시들인 이들은 독일 음반제작가들에게 최근에 '발견'되기 전까지 동네 섬유공장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루마니아 깡촌에서 조차도 지켜낸 이들 음악의 매우 높은 완성도다. 이들은 2011년 마르코비치 오케스트라와 공동음반 발칸 브라스 배틀Balkan Brass Battle(Asphalt Tango 발매)을 내놨다. 두 밴드의 경쟁심으로 시종 긴장감이 팽팽한 명반이다.  공산주의 시절 전혀 만날 수 없었던 두 밴드가 얼마나 동일한 음악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순간이다.

2011년 부다페스트에서 이 두 밴드가 만나서 같이 공연했다. 영화 007 테마를 주제로 만든 곡인데, 대중에 어필하는 곡인데도 어쨌건 집시식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이게 꽤나 흥겹다. 청중의 반응도 즉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