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 브레고비치Goran Bregović는 보스니아 출신의 락/에트노 뮤지션이다.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2차대전 후 사회적 긴장이 완화된 틈을 타서 민족 간의 혼인이 성했다. 고란 브레고비치도 이런 예로, 아빠는 세르비아, 엄마는 크로아티아계다.
고란 브레고비치의 최근 모습. 90년대 유고 내전이후 고향이 보스니아를 떠나 세르비아에 눌러 앉기는 했지만 이기 팝Iggy Pop 등 서구 락스타에게 곡을 주고 크로아티아의 팝스타 세베리나Severina 등과 교류하는 등 국제적 지명도도 높다.
20대 초반이던 70년대 말, 고란은 보스니아에서 친구들과 이런 저런 모색끝에 비옐로 두그메Bijelo Dugme(하얀 단추라는 뜻)라는 락 밴드를 결성했다. 80년대에 걸쳐 보스니아 뿐만 아니라 유고 락 음악 역사에서 다수의 기념비적 명반을 배출한 대표 밴드다. 초기작들은 딥 퍼플, 레드 제플린의 영향을 받은 정통 하드락 계열이지만, 80년대 중반부터 시류에 편승해서 뉴웨이브로 전환했다. 고란의 변신의 싹수는 여기서 부터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비옐로 두그메 전성기 때의 모습.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는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만나다 보니 경제적으로 피지는 못해도 유고슬라비아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비옐로 두그메 역시 가장 시골스런 곳에서 가장 세련된 음악을 추구한 밴드 되겠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보스니아에서 더 이상 밴드음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고란 브레고비치는 결국 세르비아에 정착하고 본령인 락음악에서 집시음악을 중심으로 한 에트노/월드 뮤직으로 방향을 틀었다.
왜 하필이면 집시음악인가? 모를 일이지만, 비옐로 두그메 후기 앨범에서는 집시노래 번안곡이 들어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고란 브레고비치의 집시음악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형성된 듯 하다.
영화감독 에밀 쿠스트리차와의 공동작업(집시의 시간dom za vešanje,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등 에밀 쿠스트리차 대표작의 음악은 모두 고란의 작품)을 통해 집시 뮤직에 기반을 둔 영화음악을 발표해서 그 성가는 일국을 넘어서 범유럽으로 퍼져 나간 바 있다.
영화 언더그라운드는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만가다. 헤쳤다 모였다를 반복하는 남슬라브족의 처지가 정처없이 유랑하는 집시들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그랬을까? 아니면 유고 내전이 한창 진행되던 가운데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혼혈로 태어난 자신의 처지가 부질없이 느껴져서 그랬을까? 적어도 90년대에 들어 사방에서 고립된 세르비아인들에게는 고란표 집시음악이 상당히 깊은 울림을 가지고 다가왔던 것 같다. 고란은 음악적 방향을 바꾼 90년대 이후 다른 나라 민족음악인(속칭 월드뮤직)들과의 교류를 통해 음악적 지평을 넓혔지만,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집시 음악만큼은 벗어나질 않았다.
고란 브레고비치작 집시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완급 조절이다. 하드 드라이브 일색의 집시음악에 고란은 긴장과 이완을 불어 넣었다. 여기에 주류적 대중감성, 모던 프로덕션 기술로 사운드를 윤색하니까 정말로 성속聖俗, 귀천貴賤이 변증법적으로 결합된 잘된 음악이 나왔다.
고란 브레고비치의 섹스Sex. 원래 음반에서는 집시 음악의 왕 샤반 바이라모비치의 음성이 수록됐다. 샤반의 다른 음반과 비교해 보면 프로듀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목이 좀 거시기 하긴 한데, 은밀하게 밀고 당기는 듯한 섹스의 정조가 잘 표현된 것 같다.
그러나 허다한 작품 가운데에서 고란 브레고비치의 최대 히트곡은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집시의 시간'(1989) 사운드트랙으로 수록된 '에데를레지'Ederlezi다. 90년대 세르비아에서는 시대의 송가처럼 불리워 졌다.
고란 브레고비치의 최근 모습. 90년대 유고 내전이후 고향이 보스니아를 떠나 세르비아에 눌러 앉기는 했지만 이기 팝Iggy Pop 등 서구 락스타에게 곡을 주고 크로아티아의 팝스타 세베리나Severina 등과 교류하는 등 국제적 지명도도 높다.
20대 초반이던 70년대 말, 고란은 보스니아에서 친구들과 이런 저런 모색끝에 비옐로 두그메Bijelo Dugme(하얀 단추라는 뜻)라는 락 밴드를 결성했다. 80년대에 걸쳐 보스니아 뿐만 아니라 유고 락 음악 역사에서 다수의 기념비적 명반을 배출한 대표 밴드다. 초기작들은 딥 퍼플, 레드 제플린의 영향을 받은 정통 하드락 계열이지만, 80년대 중반부터 시류에 편승해서 뉴웨이브로 전환했다. 고란의 변신의 싹수는 여기서 부터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비옐로 두그메 전성기 때의 모습.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는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만나다 보니 경제적으로 피지는 못해도 유고슬라비아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비옐로 두그메 역시 가장 시골스런 곳에서 가장 세련된 음악을 추구한 밴드 되겠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보스니아에서 더 이상 밴드음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고란 브레고비치는 결국 세르비아에 정착하고 본령인 락음악에서 집시음악을 중심으로 한 에트노/월드 뮤직으로 방향을 틀었다.
왜 하필이면 집시음악인가? 모를 일이지만, 비옐로 두그메 후기 앨범에서는 집시노래 번안곡이 들어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고란 브레고비치의 집시음악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형성된 듯 하다.
영화감독 에밀 쿠스트리차와의 공동작업(집시의 시간dom za vešanje,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등 에밀 쿠스트리차 대표작의 음악은 모두 고란의 작품)을 통해 집시 뮤직에 기반을 둔 영화음악을 발표해서 그 성가는 일국을 넘어서 범유럽으로 퍼져 나간 바 있다.
영화 언더그라운드는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만가다. 헤쳤다 모였다를 반복하는 남슬라브족의 처지가 정처없이 유랑하는 집시들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그랬을까? 아니면 유고 내전이 한창 진행되던 가운데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혼혈로 태어난 자신의 처지가 부질없이 느껴져서 그랬을까? 적어도 90년대에 들어 사방에서 고립된 세르비아인들에게는 고란표 집시음악이 상당히 깊은 울림을 가지고 다가왔던 것 같다. 고란은 음악적 방향을 바꾼 90년대 이후 다른 나라 민족음악인(속칭 월드뮤직)들과의 교류를 통해 음악적 지평을 넓혔지만,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집시 음악만큼은 벗어나질 않았다.
고란 브레고비치작 집시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완급 조절이다. 하드 드라이브 일색의 집시음악에 고란은 긴장과 이완을 불어 넣었다. 여기에 주류적 대중감성, 모던 프로덕션 기술로 사운드를 윤색하니까 정말로 성속聖俗, 귀천貴賤이 변증법적으로 결합된 잘된 음악이 나왔다.
그러나 허다한 작품 가운데에서 고란 브레고비치의 최대 히트곡은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집시의 시간'(1989) 사운드트랙으로 수록된 '에데를레지'Ederlezi다. 90년대 세르비아에서는 시대의 송가처럼 불리워 졌다.
전통적 집시 브라스밴드의 반주를 바탕으로 한 에데를레지. 2005년 이태리 아시시Asisi 성프란시스코 바실리카에서 개최된 크리스마스 라이브 현장이다.
에데를레지는 발칸의 종교축일 '聖조지의 날'Đurđevdan(Saint George's Day)를 기리는 집시들의 노래다. 이 날을 전후로 사람들은 강가에서 몸을 씻고 새끼양 통구이를 먹는다. 종교축일의 틀을 빌렸지만, 실제 주민들에게는 다가오는 봄을 기리는 축제날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런지 발칸의 주민들은 카톨릭, 정교, 무슬림 할 것 없이 이 날을 기념했다. 때문에 학자들은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 이교도의 축제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한다.
이보 안드리치와 더불어 보스니아 대표문호 메샤 셀리모비치Meša Selimović의 대표작 더비쉬와 죽음Derviš i smrt은 바로 이 성조지의 날부터 스토리가 시작된다. 이슬람 성직자Derviš인 주인공이 밤중에 길을 걸어가면서 성조지의 날을 맞는 주민들을 보면서 제도화된 종교적 순수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불결함과 불쾌함을 느낀다. 남과 여의 원초적 마그네티즘으로 형성되는 생명이란 순수와 고결을 숭배하는 화석화된 기성종교로는 참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에데를레지는 종잡을 수 없는 봄 또는 생명의 시작을 찬미하는 찬송이지만 그 가사는 애잔하기 그지없다.
이보 안드리치와 더불어 보스니아 대표문호 메샤 셀리모비치Meša Selimović의 대표작 더비쉬와 죽음Derviš i smrt은 바로 이 성조지의 날부터 스토리가 시작된다. 이슬람 성직자Derviš인 주인공이 밤중에 길을 걸어가면서 성조지의 날을 맞는 주민들을 보면서 제도화된 종교적 순수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불결함과 불쾌함을 느낀다. 남과 여의 원초적 마그네티즘으로 형성되는 생명이란 순수와 고결을 숭배하는 화석화된 기성종교로는 참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에데를레지는 종잡을 수 없는 봄 또는 생명의 시작을 찬미하는 찬송이지만 그 가사는 애잔하기 그지없다.
Ederlezi
All my friends are dancing the oro Dancing the oro, celebrating the day
All the Roma, mommy
All the Roma, dad, dad
All the Roma, oh mommy
All the Roma, dad, dad
Ederlezi, Ederlezi
All the Roma, mommy
All the Roma, dad, slaughter lambs
But me, poor, I am sitting apart
A Romany day, our day
Our day, Ederlezi
They give, Dad, a lamb for us
All the Roma, dad, slaughter lambs
All the Roma, dad, dad
All the Roma, oh mommy
All the Roma, dad, dad
Ederlezi, Ederlezi
All the Roma, mo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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