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의 도시들을 부를 때는 늘 등장하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영국이 잉글랜드나 그레이트 브리튼이 아니라 영국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독일 민족과의 접촉이 잦았던 슬로베니아 이하 발칸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라이바흐Laibach는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랴나Ljubljana를 독일 사람들이 지칭하는 말이다. (또 다른 예로 자그레브를 독일 사람들은 아그람Agram이라고 불렀다.)
유고슬라비아는 다른 동구권 국가들과는 다르게 잘 발달된 록씬이 있었다. 록이 기본적으로 반항적인 메시지와 청년들의 반문화에 편승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보다 극단까지 밀고들어간 밴드가 있다. 80년 티토가 죽고 난 뒤 얼마 안되 슬로베니아에서 결성된 밴드 라이바흐Laibach다. 일부러 독일어로 밴드 이름을 짓고 독일어로도 노래를 했는데, 일설에 따르면 2차 대전 등의 이유로 독일을 싫어하는 공산당 정권을 엿먹이기 위한 것이라는 속설이있다.
밴드 이름이야 어찌됐건 이 밴드가 들고 나온 음악 자체도 논란과 오해의 소지가 많았다. 나찌 이미지를 차용하고 나찌풍 제복에 군가풍의 노래를 부르는 이 밴드를 두고 네오 나찌의 등장이네, 민족주의네 전체주의네, 극우네 극좌네 해석이 분분했던 것이다.
이들의 존재를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기성정치권은 심각하게 불편해 했다. 왜 하필 독일어 이름? 왜 하필 전체주의? 왜 하필 지금? 이러한 문제로 인해 이들은 한동안 밴드 이름을 제대로 표기하지 못하거나, 공연이 금지되는 일을 겪었다. 초기작들은 독립 레이블이나 해외 레이블을 통해 발매됐다. 첫 앨범도 결성 5년 만인 1985년에 나왔다.
이것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체제 때문이었는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도 이들을 불편하게 보는 시각이 많았다. 나찌의 재림? 아니면 공산주의 선전선동? 이 때문에 80년대 이들이 미국에서 공연을 추진했을 때, 미국은 이들을 공산주의 프로파갠다 밴드로 보고 입국을 불허하기도 했다.
여기에 밴드 그 자체가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해명한 적이 없으니, 그게 더 감질나는 부분이다. 밴드의 리더가 인터뷰에 대해서 '우리는 히틀러가 화가인 만큼 파시스트다'(We are fascists as much as Hitler was a painter)라고만 말했다. 좀처럼 자신의 캐릭터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인터뷰는 차라리 정치세력의 기자회견에 가까운 적이 많다. 이와 관련해서는 Moe Bishop의 리뷰 참조.
만약 예술가들의 임무가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도발'이라고 한다면, 이들은 엄청난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들의 음악적인 작업은 당시 슬로베니아 청년 예술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종합예술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것이 신슬로베니아예술Neue Slowenische Kunst이다. 때문에 이들의 작품은 단순한 밴드가 아니라 뜻을 함께하는 예술가단체 작업의 결과다.
이들의 음악은 인더스트리얼 록Industrial Rock으로 분류된다. 슬로베니아는 구유고 지역에서 가장 산업화된 지역이기도 했다. 이런 산업현장에서 나오는 소음 등이 이들의 음악에 등장한다. 다양한 오리지널 작품들도 내놨지만, 이들 작업의 상당수는 이미 발표된 음악의 리메이킹으로 채워진다. 비틀즈, 롤링스톤즈 등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앨범들도 나왔다. 왜 리메이킹인가? 이들의 예술작품의 오리지널리티 자체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리지널이 어찌됐건 이들의 리메이킹으로 새로운 의미부여와 해석이 가능해지는 점은 매우 놀랍다.
한 예로 이들은 퀸Queen의 'One Vision'을 국가의 탄생Geburt Einer Nation이라는 독일어 노래로 개작한 적이 있다. 프레디 머큐리가 부른 'One flash of light / One God, one vision / One flesh, one bone / One true religion / One voice, one hope / One real decision' 이라는 가사를 이들이 독일어로 게다가 군가풍으로 다시 부를 때 전달되는 분위기는 너무나 생경하다. 프레디 머큐리의 비전은 새로운 맥락에서 얼마든지 전혀 반대의 의미로 전달될 수도 있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예술가라면 이 정도로 섬뜩할 수도 있어야 겠지. 80년에 결성됐으니 이제 3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밴드가 됐다. 물론 아직도 활동중이고 건재하다. 유고슬라비아 기성 정치체제에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시작한 밴드는 유고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건재하다. 이들의 음악이나 예술적 태도가 보여주는 날선 비판과 대치가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2003년에 발표된 '라이바흐와 춤을'Tanz mit Laibach은 밴드의 오늘을 보여주는 히트작이다.
이들의 예술적 태도가 워낙 첨예하다보니, 대중적 기반은 넓다고 보긴 어렵다. 잘 해봐야 컬트 밴드 정도? 대부분의 컬트 밴드가 그렇듯이 나름대로 후대 음악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그 영향을 받은 대표적 밴드가 람슈타인Rammstein이다. 강력한 헤비메탈 배경에 아름다운 멜로디를 넣을 줄 알았던 독일산 이 밴드가 불렀던 Du Hast는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라이바흐 골수 팬들은 람슈타인을 Laibach-Light 정도라고 깔보는 경향이 있다. 애들이나 듣는 음악이라는 뜻.
유고슬라비아는 다른 동구권 국가들과는 다르게 잘 발달된 록씬이 있었다. 록이 기본적으로 반항적인 메시지와 청년들의 반문화에 편승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보다 극단까지 밀고들어간 밴드가 있다. 80년 티토가 죽고 난 뒤 얼마 안되 슬로베니아에서 결성된 밴드 라이바흐Laibach다. 일부러 독일어로 밴드 이름을 짓고 독일어로도 노래를 했는데, 일설에 따르면 2차 대전 등의 이유로 독일을 싫어하는 공산당 정권을 엿먹이기 위한 것이라는 속설이있다.
나찌 군장의 라이바흐. 다 이해가 가는데, 보컬 밀란 프라스Milan Fras가 쓰고 나오는 두건은 좀....
밴드 이름이야 어찌됐건 이 밴드가 들고 나온 음악 자체도 논란과 오해의 소지가 많았다. 나찌 이미지를 차용하고 나찌풍 제복에 군가풍의 노래를 부르는 이 밴드를 두고 네오 나찌의 등장이네, 민족주의네 전체주의네, 극우네 극좌네 해석이 분분했던 것이다.
라이바흐의 데뷰앨범 Laibach에 나오는 첫곡 Sila (Force라는 뜻). 화면에 십자가가 등장하는 데, 이들은 종종 십자가 완장을 차고 나오기도 한다. 종교적 반동주의로의 회귀? 이들은 한 인터뷰에서 '신의 존재를 믿지만 신뢰하지는 않는다'(Yes, we believe in God but, unlike Americans, we don’t trust him.)라고 밝혔다. 카톨릭들도 이들을 싫어한다.
이것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체제 때문이었는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도 이들을 불편하게 보는 시각이 많았다. 나찌의 재림? 아니면 공산주의 선전선동? 이 때문에 80년대 이들이 미국에서 공연을 추진했을 때, 미국은 이들을 공산주의 프로파갠다 밴드로 보고 입국을 불허하기도 했다.
여기에 밴드 그 자체가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해명한 적이 없으니, 그게 더 감질나는 부분이다. 밴드의 리더가 인터뷰에 대해서 '우리는 히틀러가 화가인 만큼 파시스트다'(We are fascists as much as Hitler was a painter)라고만 말했다. 좀처럼 자신의 캐릭터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인터뷰는 차라리 정치세력의 기자회견에 가까운 적이 많다. 이와 관련해서는 Moe Bishop의 리뷰 참조.
만약 예술가들의 임무가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도발'이라고 한다면, 이들은 엄청난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들의 음악적인 작업은 당시 슬로베니아 청년 예술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종합예술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것이 신슬로베니아예술Neue Slowenische Kunst이다. 때문에 이들의 작품은 단순한 밴드가 아니라 뜻을 함께하는 예술가단체 작업의 결과다.
이들의 음악은 인더스트리얼 록Industrial Rock으로 분류된다. 슬로베니아는 구유고 지역에서 가장 산업화된 지역이기도 했다. 이런 산업현장에서 나오는 소음 등이 이들의 음악에 등장한다. 다양한 오리지널 작품들도 내놨지만, 이들 작업의 상당수는 이미 발표된 음악의 리메이킹으로 채워진다. 비틀즈, 롤링스톤즈 등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앨범들도 나왔다. 왜 리메이킹인가? 이들의 예술작품의 오리지널리티 자체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리지널이 어찌됐건 이들의 리메이킹으로 새로운 의미부여와 해석이 가능해지는 점은 매우 놀랍다.
한 예로 이들은 퀸Queen의 'One Vision'을 국가의 탄생Geburt Einer Nation이라는 독일어 노래로 개작한 적이 있다. 프레디 머큐리가 부른 'One flash of light / One God, one vision / One flesh, one bone / One true religion / One voice, one hope / One real decision' 이라는 가사를 이들이 독일어로 게다가 군가풍으로 다시 부를 때 전달되는 분위기는 너무나 생경하다. 프레디 머큐리의 비전은 새로운 맥락에서 얼마든지 전혀 반대의 의미로 전달될 수도 있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국가의 탄생Geburt Einer Nation. 1987년 발표작이다. 국가의 탄생.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 영화사의 걸작이지만 인종주의 시각을 담아 비난을 받는 Grifith의 영화(Birth of a Nation)도 같은 제목이다. 머큐리의 평화와 대동단결에 대한 호소는 국가의 의지 또는 집단의 의지로 치환된다.
예술가라면 이 정도로 섬뜩할 수도 있어야 겠지. 80년에 결성됐으니 이제 3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밴드가 됐다. 물론 아직도 활동중이고 건재하다. 유고슬라비아 기성 정치체제에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시작한 밴드는 유고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건재하다. 이들의 음악이나 예술적 태도가 보여주는 날선 비판과 대치가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2003년에 발표된 '라이바흐와 춤을'Tanz mit Laibach은 밴드의 오늘을 보여주는 히트작이다.
라이바흐와 춤을'Tanz mit Laibach'. 전체적으로 4박자 행진곡이지만, '댄서블'하다. 이들은 1982년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산업생산, 나찌 예술, 전체주의, 야수적 행동과 더불어' 디스코'(!)를 꼽은 바 있다.
이들의 예술적 태도가 워낙 첨예하다보니, 대중적 기반은 넓다고 보긴 어렵다. 잘 해봐야 컬트 밴드 정도? 대부분의 컬트 밴드가 그렇듯이 나름대로 후대 음악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그 영향을 받은 대표적 밴드가 람슈타인Rammstein이다. 강력한 헤비메탈 배경에 아름다운 멜로디를 넣을 줄 알았던 독일산 이 밴드가 불렀던 Du Hast는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라이바흐 골수 팬들은 람슈타인을 Laibach-Light 정도라고 깔보는 경향이 있다. 애들이나 듣는 음악이라는 뜻.
너무 팍팍한 음악만 소개한 데 대한 사과의 표시로 람슈타인의 Du Hast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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