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30일 일요일

구유고의 집시 4 : 영화 속 집시 2 - Anđeo Čuvar

현재 유럽에서 가장 큰 사회문제의 하나는 집시들의 앵벌이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집시들의 구걸이야 옛날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이런 일들이 '조직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앵벌이가 산업화되자 당연히 인신매매, 아동학대 등의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 집시들이 많이 모여사는 구유고 지역이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리가 없다

이 문제를 작심하고 들여다본 유고 영화가 '수호천사'Anđeo čuvar(1987)다.

스토리는 이렇다. 영화의 초두는 집시 마을 상공에서 천천히 마을, 특히 주인공 집시네 집으로 하강하는 부감샷으로 시작한다. 그야말로 수호천사의 하강을 보여주는 샷이다. 그럼 수호천사는 누구인가?

신문기자 드라간Dragan은 집시들의 인신매매 현황을 취재하다가 현장에서 적발된 집시아이들 중에서 샤인Šajn이라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사회사업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음악(아코디온)에 재능이 있다는데, 다년간의 학대를 겪은 탓인지 맘을 좀처럼 열지 않는다.

신문기자 드라간Dragan. 1936년생 마케도니아 출신의 류비샤 사마르지치Ljubiša Samardžić가 역할을 맡았다. 슬라브인 답게 2m에 가까운 장신이다. 덕분에 상대역으로 나오는 아이들이 훨씬 작아보인다.

샤인Šajn 역할을 맡은 야쿱 암지치Jakup Amzić. 이상한 일은 집시들은 주연을 맡아도 영화배우를 업으로 삼는 일이 거의 없다. 영화 속의 이 아이는 지금은 30대 후반 나이가 됐을 텐데, 후속작도 없고 뭐하고 지내는지도 모른다.

어찌어찌 샤인을 집으로 보내놓고, 아무래도 마음이 찜찜한 드라간. 잘 사는지 집시 마을을 방문해 보기로 한다. 갔더니 왠 걸. 경제력 제로 아빠가 다시 샤인을 '조직'에 팔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엄마도 얼마전에 죽고.. 기왕에 돋은 궁금증/측은지심으로 드라간은 베니스까지 샤인을 찾아 나선다.

이런 애 본 적있니? 당연히 애들은 모르쇠. 

드라간은 천신만고 끝에 경찰에게 잡힌 샤인을 다시 찾아낸다. 밥(+술)도 사주고 놀이동산도 같이 가주는 드라간에게 샤인은 마음을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드라간의 자동차 뒷자석에서 여자친구와 만나는 샤인. 창녀로 일하는 같은 처지의 집시소녀다.  

계속되는 '조직'의 학대를 참지 못한 샤인, 결국 드라간과 같이 세르비아로 도망친다. 이제 좀 제대로 된 사회시설에 샤인을 의탁할 생각을 하던 드라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샤인은 참지못하고 몰래 고향집으로 간다.

다시금 샤인을 찾으러 집시마을을 방문한 드라간. 그런데 샤인의 태도가 영 삐딱하다. 알아보니, 아빠는 감옥에 갔고 어린 동생들만 집에 남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샤인의 분노는 왜 드라간이 엄마의 죽음을 자기에게 알리지 않았냐는 데서 비롯된다.  집안을 챙기기 위해서는 다시 이태리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샤인의 퉁명스런 대답이다.

샤인의 쌀쌀한 태도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드라간의 '영업 방해' 사실을 알아챈 '조직'이 나선 것이다. 결국 드라간은 마을에서 '조직'에 죽음을 당하게 된다.

영화는 결국 '수호천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관람객에게 던진다. 드라간의 선의는 무시할 수 없지만, 그가 샤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고아원에 의탁하는 것 뿐이다. '조직'의 작태는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지만, 어쨌거나 덕분에 샤인의 동생들은 연명할 건덕지가 생겼다. 그렇다면 '수호천사'란 선의로 샤인을 구하려다 목숨까지 잃은 드라간인가? 아니면 인륜에 합당하지는 않지만 집시들에게 살 구석을 마련해주는 '조직'인가? 물론 영화는 질문만 할 뿐. 대답은 관객의 몫이다.

이 영화가 나오는 1987년, 유고슬라비아는 앞서 소개한 '깃털수집상'이 나온 60년대와는 상당히 판이한 상태에 있었다. 티토도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어지러웠다. 무엇보다 민족주의가 사회 여기저기서 파열음을 내고 있던 때다. 여느 사회주의 국가에 비해서도 개방적이었던 유고슬라비아에서 집시들의 앵벌이가 고질화되던 시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성조지의 날'Đurđevdan 축제일에 집시들이 냇가에서 몸을 씻는다. 아무리 무법해 보여도 집시들 나름의 사회적 질서와 제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집어 넣은 장면이 아닐까 싶다. 어두워서 잘 안보이지만,  영화의 마지막 샷에는 쓰레기 더미 위에 쓰러져있는 드라간의 모습도 비춘다. 구유고 집시음악의 거두 샤반 바이라모비치가 이 영화에서 샤인의 아빠 역할을 맡고, 메인테마Sajbija까지 불렀다. 

이 같은 문제는 EU가 들어선 오늘날이라고 특별한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이에 집시들이 많은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까지 EU로 가입한 만큼, 집시들의 휴먼 트래피킹은 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간 듯 하다. EU가 풀어야할 난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