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랴나 부틀레르 페트로비치Ljiljana Buttler Petrović. 보스니아산 구유고의 가수로 대스타라고 부르기는 조금 모자란다. 본령은 집시뮤직이지만, 세브다흐도 능통하다. 에트노 뮤지션으로도 분류할 수 있겠지만, 본질은 로컬 카페 가수다.
1944년 아코디온 주자 집시 아빠 가수 크로아티아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서 아빠가 도망가고, 보스니아 로컬 카페에서 가수로 일하는 엄마 슬하에서 유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아파서, 대신 나가서 노래를 부른 것이 그대로 데뷔로 연결됐다. 그러다 편모로서의 삶이 고됬던지 엄마도 도망가버리고, 여사는 십대 나이에 홀홀 단신으로 남게 된다. 카페 가수로 살면서 어쩌다 하게 된 임신 끝에 첫 애를 낳았을 때가 14살 때라고 하니까, 초장부터 곡절이 많은 인생이다.
83년 발표작 커버에 실린 릴랴나 여사. 부틀레르라는 성을 붙이기 전의 모습이다. 언뜻 동양인 같은 인상도 있는데 어찌보면 강부자 여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70년대 들어 가수로 인정받게 되고 음반을 내면서 집시 뮤지션으로 어느 정도 인기도 끌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 80년대 들어와서 유고의 대중음악이 더욱 서구화되거나 민요의 대중가요화가 진행되면서, 집시음악은 구린 음악이 됐던 듯 하다. 고심 끝에 여사는 1989년 점점 개판이 되가는 유고슬라비아를 뒤로 애들을 끌고 독일로 떴다.
말해봐 왜 날 버렸는지kaži zašto me ostavi. 2005년 발표작 첫곡으로 수록된 노래다. 시골구석 카페에서 집시가수가 부르는 정경을 상상해 보면 되겠다. 스스로가 일찍부터 여러번의 버림을 받아서 그런지, 노래 속에 버려진 사람의 흉금이 절실하다.
독일이라는 이름의 타향, 한물간 여가수를 알아줄 사람은 없다. 전혀 유고스럽지 않은 이름 부틀레르Buttler는 독일에서 얻은 성이다. 영주권을 얻고자 위장결혼한 결과라고 한다. 유고에서는 완전히 잊혀진 사람으로, 호텔 청소부 등 허드렛일로 호구했다.
이러던 그녀를 다시금 세상으로 끌어낸 것은 모스타르 세브다흐 레우니온Mostar Sevdah Reunion의 프로듀서 드라기 셰스티치Dragi Šestić다. 어느날 우연히 옛날 레코드를 듣다가 삘받았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찾아낸 은퇴 여가수. 한번 다시 해보자는 프로듀서. 여사는 망설였다고 한다.
2002년 보스니아로 돌아와서 낸 앨범이 Mother of Gypsy Soul. 반응이 좋았다. 2005년 다시금 판을 냈다. Legends of Life라는 이름으로. 첫판이 몸이 덜풀린 서먹한 기가 있다면, 2005년판은 가수로서의 워밍업이 끝난 그야말로 완숙한 '작품'이 됐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맘에 드는 앨범이다.
또다른 2차 복귀작 수록곡. 나는 작은 집시소녀Ciganka sam mala. 여사가 '밤새워 노래부르고 춤추는 나는 당신의 작은 집시소녀...'의 생활을 살았으니 이런 해석이 나온다. 원래는 업템포의 곡인데 여사는 미드템포로 불렀다. 노래의 이면에 남을 즐겁게 해야하는 집시 여가수의 신산한 삶이 읽힌다.
릴랴나 여사의 매력은 낮은 중저음, 인생의 곡절이 베어있는 속깊은 노래들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한테 버림받고 카페가수로 살다보니, 여사에게는 예술가나 인기가수로서의 고아한 자의식이 없다. 그런만큼 내려 놓고 불러서 그런가. 여사의 노래는 가식없고 진솔하다. 달관이랄까 체념이랄까. 전반적으로 고달픈 인생에 맞춰진 노래들이다. 그래서 붙었을 것이다. 집시 쏘울의 대모라는 별명도.
이 양반, 이렇게 다시 돌아와서 인생 좀 피나 싶었는데, 아쉽게도 2009년 예순 다섯에 돌아가셨다. 아쉬울 뿐이다. 고생 많으셨다. 편히 쉬시라.
1944년 아코디온 주자 집시 아빠 가수 크로아티아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서 아빠가 도망가고, 보스니아 로컬 카페에서 가수로 일하는 엄마 슬하에서 유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아파서, 대신 나가서 노래를 부른 것이 그대로 데뷔로 연결됐다. 그러다 편모로서의 삶이 고됬던지 엄마도 도망가버리고, 여사는 십대 나이에 홀홀 단신으로 남게 된다. 카페 가수로 살면서 어쩌다 하게 된 임신 끝에 첫 애를 낳았을 때가 14살 때라고 하니까, 초장부터 곡절이 많은 인생이다.
83년 발표작 커버에 실린 릴랴나 여사. 부틀레르라는 성을 붙이기 전의 모습이다. 언뜻 동양인 같은 인상도 있는데 어찌보면 강부자 여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70년대 들어 가수로 인정받게 되고 음반을 내면서 집시 뮤지션으로 어느 정도 인기도 끌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 80년대 들어와서 유고의 대중음악이 더욱 서구화되거나 민요의 대중가요화가 진행되면서, 집시음악은 구린 음악이 됐던 듯 하다. 고심 끝에 여사는 1989년 점점 개판이 되가는 유고슬라비아를 뒤로 애들을 끌고 독일로 떴다.
독일이라는 이름의 타향, 한물간 여가수를 알아줄 사람은 없다. 전혀 유고스럽지 않은 이름 부틀레르Buttler는 독일에서 얻은 성이다. 영주권을 얻고자 위장결혼한 결과라고 한다. 유고에서는 완전히 잊혀진 사람으로, 호텔 청소부 등 허드렛일로 호구했다.
이러던 그녀를 다시금 세상으로 끌어낸 것은 모스타르 세브다흐 레우니온Mostar Sevdah Reunion의 프로듀서 드라기 셰스티치Dragi Šestić다. 어느날 우연히 옛날 레코드를 듣다가 삘받았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찾아낸 은퇴 여가수. 한번 다시 해보자는 프로듀서. 여사는 망설였다고 한다.
2002년 보스니아로 돌아와서 낸 앨범이 Mother of Gypsy Soul. 반응이 좋았다. 2005년 다시금 판을 냈다. Legends of Life라는 이름으로. 첫판이 몸이 덜풀린 서먹한 기가 있다면, 2005년판은 가수로서의 워밍업이 끝난 그야말로 완숙한 '작품'이 됐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맘에 드는 앨범이다.
릴랴나 여사의 매력은 낮은 중저음, 인생의 곡절이 베어있는 속깊은 노래들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한테 버림받고 카페가수로 살다보니, 여사에게는 예술가나 인기가수로서의 고아한 자의식이 없다. 그런만큼 내려 놓고 불러서 그런가. 여사의 노래는 가식없고 진솔하다. 달관이랄까 체념이랄까. 전반적으로 고달픈 인생에 맞춰진 노래들이다. 그래서 붙었을 것이다. 집시 쏘울의 대모라는 별명도.
이 양반, 이렇게 다시 돌아와서 인생 좀 피나 싶었는데, 아쉽게도 2009년 예순 다섯에 돌아가셨다. 아쉬울 뿐이다. 고생 많으셨다. 편히 쉬시라.
치간(Цига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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