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4일 월요일

구유고의 집시 2 : 어떻게 살 것인가

2차대전을 맞아 집시들은 유태인들과 더불어 홀로코스트를 겪었다. 발칸지역 역시 크로아티아 우스타샤와 독일 나찌 점령군은 집시와 세르비아인들을 개잡듯 잡았다. 2차 대전 중 유태인들은 6백만이 죽었다고 하는데, 집시들에게는 그 수를 헤아려 줄 사람도 없다.

이 같은 참상은 결국 스스로가 정치세력화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집시들이라고 당하고만 있을까.

세르비아의 집시 쟈르코 요바노비치Žarko Jovanović는 2차대전을 맞아 일족의 대부분을 수용소에 잃었다. 티토의 빨치산에 합류하여 목숨을 보전한 쟈르코는 1964년 파리로 이주한다. 그는 1971년 세계최초로 런던에서 전세계집시회의Romani Congress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1978년 2차 제네바 회의 당시에는 '문화부 장관'에 추대됐다. 스스로는 일국의 장관이 아니라 전세계 (집시들의) 장관이니 훨씬 격이 높다고 주장했다.

1971년 회의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집시깃발이 공인되고, 더 나아가 쟈르코 요바노비치가 만든 집시들의 앤썸, 젤렘 젤렘Đelem Đelem(이것도 지역마다 고유한 표기 방식에 따라 Djelem Djelem, Gelem Gelem, Jelem Jelem, Dzelem Dzelem 등 허다한 방식으로 표기)이 채택됐다는 것이다. 이제 국기國旗에 국가國歌가 생겼으니, 모든 게 거의 이뤄졌다. 국가國家만 만들면 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집시들의 깃발. 깃발 정중앙에 인도에서 모티브를 따 온 바퀴문양이 그려져 있다.  원래 만들어진 것은 2차 대전 전의 일인데, 1971년에서야 전세계 집시들에게 공인됐다고 한다. 

젤렘 젤렘. '간다 간다' 또는 '유랑한다'라는 뜻의 로마니어 단어라고 한다. 원래 있던 멜로디에 요바노비치가 가사를 붙였다. 집시 가수 또는 밴드들 치고 이 노래를 부르지 아니한 사람이 없다. 민족가, 국가 또는 앤썸이라고 한다면 집단의 뜻을 담은 힘찬 노래여야겠지만, 이 노래에는 오히려 슬픔과 우수가 서려 있다. 국가로써는 부적격이다.

쟈르코 요바노비치가 직접 부른 젤렘 젤렘. 요바노비치는 파리에서 발랄라이카(러시아 3현악기) 연주자로 활약했다. 원래는 '일어서라 집시여'Opre Roma라는 보다 선동적인 제목을 붙이고 싶어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서 나온 가사를 소개하자면 대충 이런 뜻이라고 한다.

"먼 길을 가다 행복한 집시들을 만났네. 어디서 오는가 집시여. 텐트를 짊어지고 행복하게 길을 가네.... 내 원래 가족이 있었으나, 검은 군단이 잡아 죽였다네. 가자, 전세계 집시들이여. 집시들에게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네. 일어나라 집시여. 지금 행동한다면 더 높게 일어서리.."

검은 군단Black Legion이 가족을 죽였다는 내용은 요바노비치의 개인적 트라우마에서 나온 것이다. 나찌 친위대,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모두 검은 색 옷을 유니폼으로 입었거든. 2차대전 당시를 생각하면 집시들에게는 상당히 보편적 호소를 담고 있다.  그러나 집시들이 반드시 이 가사에 천착하고 있지는 않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하지만 어쨌거나 젤렘 젤렘 만큼은 집시들의 전폭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다고 봐도 될 듯 하다.

세르비아의 집시뮤직의 왕 샤반 바이라모비치가 쏘울풀하게 부른 젤렘 젤렘. 가사는 첫소절을 제외하고는 요바노비치와 일치하지 않는다. 샤반 바이라모비치 목소리에 곁들여 나오는 화면은 1987년 유고 영화 '수호천사'Anđeo Čuvar의 장면으로 구성된 것이다. 샤반 바이라모비치도 이 영화에 출연했다. 

어쨌거나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동유럽 집시의 본산 루마니아에서 집시들이 정당도 결성하고 케이블 채널도 보유하고 있다고들 한다. 합목적적 정치 활동을 집시들이 주도하기 시작한 것은 공산주의 붕괴 이후 최근의 현상이다. 이런 점에서 과거와는 달라지지 않겠는가를 조심스럽게 점쳐보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의 차이가 너무 큰것도 사실이다.

세르비아나 마케도니아에서 집시 뮤지션들이 크게 성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나머지 나라들은 그렇지 못하다. 자기 앞가림이 급하다 보니, 집시들에게까지 돌아갈 에너지와 신경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서구 선진국들이라고 크게 다를 것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거의 도찐개찐 아닐까 추론해본다.

보스니아 투즐라에서 본 노래하는 집시. 어린나이지만 보스니아의 오랜 장르음악인 세브다흐를 곧잘 소화했다. 집시들에게 동냥과 거리공연 사이의 경계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무반주인데다 자세로 보아 아무래도 동냥이라고 봐야할 듯....

집시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또는 집시들을 어떻게 사회 속에서 제대로 된 구성원으로 편입시킬 것인가. 구유고 연방 출신 나라들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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