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4일 토요일

구유고의 음악 12 : 유고슬라브 뉴 웨이브 1 - Šarlo Akrobata

유고슬라비아는 사회주의권 치고 드물게 록음악이 성했다. 프로그레시브, 펑크, 하드록 등 다양한 장르의 록음악이 나왔고 음악적 성과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알아주는 마냥 입안의 혀처럼 남모를 유고 청년의 고민을 대변하고 표현한 록의 하위장르가 있다면 단연 80년대 초 대유행한 뉴웨이브가 아닐까 한다.

왜 하필이면 뉴웨이브였을까?

우선 시운이다. 유고슬로비아 뉴웨이브(이 나라 말로는 Novi Val 또는 Novi Talas)가 본격화된 것이 80년대 초의 일이다. 80년은 유고 원맨쇼의 주인공 티토가 죽은 해이기도 하다. 한 시대를 개막했던 거물이 죽고 난 다음, 유고 사회는 놀랄만큼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석유파동의 여파로 경제도 한참 어려울 때다. 여기저기 실업율도 높아지고, 당연히 사회에 불만을 품은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이들 앞에 마침 뉴웨이브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때 나온 음악인 만큼 사회주의 체제비판적이거나 불만적인 가사가 많았다.

거기에 뉴웨이브 음악의 기본적인 특성도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유고슬라비아에는 블루스/컨트리 등의 록의 기본 자양 자체가 없었다. 뉴웨이브 같이 특별하게 천착해야할 역사도 없고 너무 과격하지 않으면서 만들기도 쉽고 듣기도 쉬운(적어도 그렇게 느껴지는..) 음악이 유고 도시 청년들의 감성에는 더 잘맞았던 것같다.

유고슬라비아 뉴웨이브의 신호탄이 된 Paket Aranžman(패키지 딜이라는 뜻). 1981년 Jugoton 발매. 주로 펑크 음악에서 한 발 더 나간 포스트 펑크 뉴웨이브 장르 음악들을 담았는데, 베오그라드의 3두마차 밴드 Idoli (Idols), Šarlo Akrobata(Charles of Acrobat), Električni Orgazam (Electric Orgasm)의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지금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쉽게도 절판이다. 당장은 유튜브에서 듣는 수 밖에는 길이 없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처음에는 서구에 대한 선망의식과 뽕짝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로 록을 시작했던 것은 유고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유고의 뉴웨이브 밴드들은 한 발 더 나아가서 Bijelo Dugme나 Riblja Čorba 등의 선배들을 '시골'록 이라고 폄하했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치고 나간다고 앞세대를 부정하고 극복하려는 록의 고유한 변증법이 발현된 결과였다.

같은 뉴웨이브라고 하더라도 지역적인 특성이 없지는 않았다. 자그레브의 뉴웨이브가 Azra, Haustor, Prljavo Kazalište 등을 중심으로 좀더 대중적이고 멜로딕했다고 한다면 Idoli, Šarlo Akrobata, Električni Orgazam 등이 대표하는 베오그라드씬은 훨씬 더 전위적이고 리듬 중심적이었다.

유고의 뉴웨이브 밴드 중에서 개인적으로 눈에 띄는 존재는 샤를로 아크로바타Šarlo Akrobata다. 샤를로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유고사람들이 부르는 찰리 채플린의 애칭이란다. 그렇다면 밴드 이름의 뜻은 아크로바트하는 찰리 채플린 정도라고나 할까나?

밴드멤버. 왼쪽부터 기타 밀란 믈라데노비치Milan Mladenović, 가운데가 베이스 두샨 코야 코이치Dušan Koja Kojić, 오른쪽이 드럼 이반 브드 브도비치Ivan VD Vdović. 

기타, 드럼, 베이스 가장 단촐한 구성의 트리오지만, 가장 과격하고 실험적이었다. 특히 베이스 라인이 육중한데, 이건 아무래도 베이스를 담당했던 두샨 코이치(애칭 코야Koja)의 개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그렇다고 밀란이나 이반이나 쉬운 성격은 아니었다. 이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 'Bistriji ili tuplji čovek biva kad'은 개성의 충돌이라고 할 만큼, 화려한 불협화음들이 가득 차있다. 그러나 같은 불협화음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은 전위적/학구적인 것이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청춘의 에너지 같은 느낌이다. 앨범 두번째 트랙 '애들 잘보시라'Pazi na decu I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괴성이 꼭 이런 느낌이다. 예컨대는 이런 거다. 밤 늦게 동네 굴다리나 한강 고수부지 같은 데를 지나가다보면, 고삘이 중삘이들이 모여 놀다가 씰데 없고 의미도 없는 괴성을 지를 때가 있다. 세상은 불가해하고,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고, 달리 풀어갈 방법도 없지만, 에너지만 남아돌아가는 청춘들의 자화상. 90년대 미국의 얼터너티브 붐이 청춘의 이유없는 열폭, 열패감의 소산이라고 한다면, 유고의 80년대 뉴웨이브도 그러한 느낌이 강하다.

위의 컴필 앨범에 수록되어있는 트랙 중의 하나, 내 머리 주위로oko moje glave. 트리오 멤버가 담당한 세 악기가 오직 리듬에만 복무하는 느낌이다.  화려한 애드립, 이런 거 없다. 그렇지만 악기 다루는 실력이 상당하다는 감은 강하게 온다.


개성이 강한 멤버들이 있다보니 밴드 활동 중 다툼이 심했다. 그 탓에 1981년 베오그라드의 다른 밴드들과 더불어 만든 컴필 앨범 Paket Aranžman에 이어, 독집 앨범를 발매하고는 해산했다.


코야의 회고에 따르면 독집앨범을 발표할 무렵에는 멤버들 간에 너무싸워서 이미 정이 다떨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앨범이 너무 늦게 나온 셈이라고나 할까. 발표한 앨범 자체가 별로 없다보니까 다른 밴드들이 유구한 역사를 바탕으로 베스트 앨범 격인 얼티밋 컬렉션 더블판을 발표해도 이 밴드는 그런게 없다. 애초에 더블 판을 채울 만큼의 노래도 없었거든.


유일한 방법이라면 리마스터 판을 내는 것인데, 발매사인 Croatia Records(유고슬라비아 록의 산실 Jugoton의 후신이다)가 2007년 반짝 박스세트로 재발매한 다음 다시 절판 상태다. 아쉬울 뿐이다.



81 년 나온 이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독집 앨범 Bistriji ili tuplji čovek biva kad (사람은 이럴 때 똑똑해지거나 멍청해진다). 곡도 좋지만 뭣보다 놀라운 것은 에너지 레벨이다. 젊었을 때만 나오는 그런 레벨이다개인적으로는 수록곡 중 뭐 하나 버릴 것 없는 명반 중의 명반이다. 이런 건 통째로 다 들어줘야 한다.  


헤어지고 난 후 멤버들 중 밀란과 이반은 에카테리나 대제Ekatarina Velika(EKV)를 구성해서 활동을 계속하다 90년대 각각 마흔도 못채우고 췌장암과 AIDS로 죽었다. 유일한 생존멤버인 코야는 Disciplina Kičme라는 리듬섹션으로만 만들어진 전위밴드를 만들어 요새도 음반을 내고 있다. (유고가 한참 어지러웠던 한 때 영국에서 활동한 덕에 밴드 이름을 Disciplin A Kitschme라고 고쳤다)

코야가 리드하는 Disciplina Kičme의 최신작 Uf!에 수록된 Ako ti je glasno(이게 너에게 시끄럽다면). 밴드 구성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강력/펑키하면서도 희한하다.  아무래도 샤를로의 아방가르드는 코야 담당이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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