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6일 일요일

보스니아 유사 13 : 히틀러의 작난

근세사에서 보스니아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 불안이 가장 크게 확대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2차대전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독, 이, 일의 3국동맹에 참여했던 유고슬라비아 섭정  파블레공이 쿠데타로 쫓겨나자 히틀러는 유고슬라비아의 반응을 기다려주질 않았다. 1차대전 후 각 참전국의 명운을 결정한 베르사이유 조약을 처음부터 부정하고 시작했던 히틀러로서는 그 산물인 유고슬라비아 자체도 존중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유고슬라비아군 수뇌부로서는 한 20일은 버티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했지만, 왕정 유고슬라비아군이 백기투항한 데 든 시간은 열흘 남짓. 가볍게 유고슬라비아를 접수한 독일(과 이태리 등)은 유고의 국경을 다시 그렸다. 이렇게 해서 과거 동로마와 서로마 제국을 기점으로 해서 서쪽은 독립 크로아티아, 동쪽에는 괴뢰 세르비아를 앉혀 놓고,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독일과 이태리가 반분하는 형태였다. 보스니아는 하루 아침에 독립 크로아티아의 영역이 된다. 

2차대전의 시작과 더불어 만들어진 독립크로아티아NDH, 보스니아를 꼴랑 다 먹어 버렸다. 보라색으로 처리된 해변지역은 NDH가 이태리에게 넘겨준 지역이다.  

크로아티아로 들어선 우스타샤 정권은 독일과 이태리의 '순수성'을 벤치마크해서 유태인은 물론 영내의 세르비아계를 잡도리하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 본토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 같은 난리가 극대화하되는 곳은 역시 세 민족이 모여사는 보스니아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독립크로아티아NDH 정부는 보스니아에서도 일단 사라예보를 거점으로, 체계적으로 유태인들하고 세르비아계들을 잡도리질하기 시작했다. 우스타샤 정권은 희한하게 무슬림들에게는 관대했다. 아무래도 보스니아에서 겪는 숫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무슬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였는지, 무슬림들을 적극적으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애를 썼다. 여기에 무슬림들의 일부가 호응을 했다. 

무슬림들의 상징인 페즈를 착용한 NDH의 수령 안테 파벨리치. 그 스스로가 보스니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헤르체고비나) 출신이다. 석회암으로 팍팍한 헤르체고비나 땅을 두고 세르비아인들은 '돌과 뱀 그리고 우스타샤 만 나오는 곳'이라고 한다.

물론 우스타샤 정권이 유화의 손길을 준다고 해서 무슬림들의 마음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다종교 사회를 살아온 대다수 무슬림들에게는 우스타샤가 벌이는 학살극이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 한 때는 사라예보 무슬림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우스타샤와 일부 무슬림 '쓰레기'들의 살륙극을 중단하라는 청원이 작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일도 일회성으로 그치고 말았다. 무엇보다 무슬림들을 하나로 묶는 정치적 비전과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스타샤의 장단에 얼결에 선무당 칼춤을 췄던 무슬림들이 NDH가 자신을 전혀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시작하면서 NDH에서 이탈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한 무리의 무슬림들이 히틀러에게 독일의 보호하에 자치와 별도의 무장조직을 요구했다. 히틀러는 선심쓰는 척하면서 보스니아 무슬림들로 이뤄진 친위돌격대 SS를 조직했는데, 그것이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원성을 듣는 단초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세르비아계 역시 팔짱끼고 앉아만 있지는 않았다. 세르비아계는 어디까지나 1940년대에서 보스니아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자랑하던 민족이다. 게다가 보스니아의 꼬불탕 산악지역이 NDH 나 독일군이 생각하듯이 쉽게 접수가 되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세르비아계 민병대Četnik 조직이 들고 일어났다. '눈에는 눈' 여기저기서 당한 학살에 대한 앙갚음으로 도처에서 학살극을 벌였다. 

보스니아의 산악지형은 게릴라 전을 벌이기 딱 좋은 지형이다.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에 뿌리를 내릴 수 없었던 공산주의자들이 여기를 주무대로 게릴라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싸움을 두고 독일과 이태리 등 파시스트 외세를 몰아내기 위한 인민해방전쟁의 기치가 걸렸지만, 내용은 결국 크로아티아계 우스타샤, 세르비아계 체트닉,  공산주의 빨치산의 3파전의 양상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었다.

히틀러의 작난질은 보스니아에서 전혀 다른 성격의 전쟁을 파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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