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3일 화요일

세르비아 이야기 2 : 코소보 1389

어느 민족이나 운명이 바뀌게 되는 결정적 전기가 있다. 세르비아 사람들은 그것이 1389년 코소보라고 생각한다.

* 코소보의 소녀, 우로쉬 프레디치Uroš Predić가 1919년에 완성한 그림으로 아직도 가장 인기 있다. 전투 다음 날 부상당한 병사를 부축하는 코소보 소녀의 모습에서 세르비아의 자기투사가 보여진다. 

1389년이면 네마냐 왕조의 두샨이 제국의 위업을 세운지도 얼마 안되는 때다. 하지만 아들이자 후계자 스테판 우로쉬Stefan Uroš도 왕업을 이을 실력이 없었다. 친족과 호족들이 너도 나도 권위에 도전하고 나섰다. 얼마 안가 우로쉬가 후사를 남기지 않고 죽어 네마냐 왕조도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때문에 14세기 세르비아는 호족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했고, 이렇게 지역사정이 어지러운 가운데 1389년 오토만의 술탄 무라드Murad I가 대군을 이끌고 유럽원정길에 나섰다. 결국 라자르 흐레블랴노비치Lazar Hrebeljanović를 중심으로 한 세르비아 호족 연합군이 이들을 검은새벌, 코소보 들판Kosovo Polje에서 맞선다.

세르비아에서 민족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보는 이 전투의 구체적인 모습과 결과에 대해서는 예상 외로 자료가 많지 않다. 이 전투의 결과를 놓고 세르비아는 장렬한 패배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후세에 돌아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것이고 반드시 모든 사람이 동의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전투 직후, 상황에 대한 평가는 서구에서 떠돈 서신과 편지들을 보면 오히려 세르비아 측의 승리라고 표현한 경우가 종종 나왔다.

적어도 거의 확실하다고 믿어지는 점은 전투자체는 매우 격렬했을 것이라는 점, 그 결과로 양측의 총수 즉 라자르와 무라드가 모두 전사했다는 사실 정도이다. 그래서 후세 사가들은 세르비아의 일방적 패배보다는 무승부 정도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투의 직접적 결과가 어찌 되었건, 오토만은 다시 끌고올 군사력과 재정이 충분했지만, 세르비아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라자르의 아들 스테판Stefan은 터키에 충성을 서약하고 오토만의 봉신Vassal이 됐다.  특히 스테판은 오토만 터키가 헝가리 주도 십자군을 1396년 니코폴리스Nicopolis (오늘날 불가리아의 Nikopol)에서 격퇴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코소보는 세르비아인들의 입장에서는 민족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자 역사적 사실을 넘어서는 신화로 격상된다.

라자르가 코소보에서 결전을 벌이기 전 날, 그는 선지자 엘리야Elias의 계시를 받는다. 엘리야는 라자르에게 묻는다.  천상의 왕국 Heavenly Kingdom을 원하는지 아니면 땅위의 왕국 Earthly Kingdom을 원하는지. 땅위의 왕국을 원한다면, 내일 전투에서 승리할 것이지만, 언젠가는 망할 것이고, 천상의 왕국을 원한다면 내일 전투에서 지고 전사하더라도, 천국에서 하늘의 왕국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에 라자르는 천상의 왕국을 선택하고 나아가 장렬히 전사를 했다는 이야기. 이 찬란한 정신승리의 전설로 세르비아인들은 스스로를 천상의 민족 heavenly people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최근에도 세르비아가 코소보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우리민족에게 백두산을 통째로 외국에 넘기라는 것과 비슷한 감정적 무게라고나 할까.

후세 학자들은 이 신화의 구조가 금도끼 은도끼 예수의 고난과도 일치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만큼 드라마틱하다. 클라이막스는 당연히 세르비아 민족의 부활이다. 19세기 민족주의 시대를 맞아 이 신화는 더욱 확대재생산되면서 대大대세르비아의 꿈을 키우는 자양분이 됐다. 그리고 그 꿈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 베오그라드 연고 축구팀 츠르베나 즈베즈다Crvena Zvezda 축구경기에 등장한 1389 코소보 머플러

전투가 있었던 6월 28일은 세르비아 정교 축일인 Vidovdan(Saint Vitus Day)이다. 이 날에는 이 극적인 민족에게 유난히도 극적인 역사적 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1389년 코소보 전투를 필두로, 1914년 1차대전의 발화점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저격사건도 이날 일어 났다. 뿐인가 티토 치하의 유고슬라비아는 1948년 6월 28일 스탈린 주도 코민포름에서 축출됐다. 가장 최근 1989년 이 날에는 밀로세비치가 코소보 들판에서 전투 600주년 기념연설을 하면서 유고슬라비아 붕괴를 촉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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