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0일 토요일

발칸은 도대체 어디인가?

발칸반도Balkan peninsula라는 말이 있지만, 그 정확한 지리적 경계는 통일되어 있지 않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아드리아해, 에게해 등을 포함한 지중해, 흑해를 3면으로 해서  소챠Soča, Vipava비파바, 크르카Krka, 사바Sava, 다뉴브Danube 강을 경계로한 광대한 지역을 발칸이라고 칭하거나 사바, 다뉴브를 제외한 다른 강들이 들어서서 발칸을 구획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더불어 발칸국가Balkans라는 말도 있다. 발칸반도에 들어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또 다시 위키에 따르면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코소보, 불가리아, 그리스를 기본으로 해서 루마니아와 슬로베니아를 넣기도 하고 넣지 않기도 한다.

자료원 : http://exetertraveljournal.blogspot.com/2009/01/historic-fortresses-of-balkans.html

발칸이라는 명칭 자체가 터키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19세기 근대 유럽에 있어서 발칸은 지근 거리에 있으면서도 문명권 상으로는 양립할 수 없는 영원한 '타자'를 의미했다. 19세기 유럽의 문명(!)국들은 발칸을 쇠락하는 터키 제국의 무능, 부패와 결부시키면서 그 인식 자체를 유럽 문명의 안티테제로 부각시켰다. 이보 안드리치의 소설 속에서도 보스니아로 발령난 오스트리아 영사의 부인이 왜 자신이 '아시아'로 가야하냐면서 속상해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에디트 더햄Edith Durham이라고 20세기 초 발칸반도를 여행한 작가는 유럽인들의 인식을 이렇게 정리했다. 발칸에서 무슬림이 무슬림을 죽이면 잘된 일이고, 무슬림이 기독교인을 죽이면 폭정이자 탄압이고, 기독교인이 무슬림을 죽이면 숭고한 독립투쟁이었다고... 이 같은 편향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 같은 인식이 팽배하다보니,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발칸국가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이다. 이 두 나라는 스스로의 소속처를 숭고한 중앙유럽Central Europe(!)으로 본다. 중앙유럽이 어디인가?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다. 세르비아는 스스로를 발칸반도 국가로 인정을 하지만, 자신은 이슬람을 극복하고 이겨낸 기독교 문명의 보루라고 생각한다.

슬로베니아 출신으로 인기있는 철학자(?)인 슬라보이 지젝은 이런 현상을 '모든 나라가 발칸을 필요로 한다Every Country Needs Balkans'고 정리한다. 이태리나 오스트리아 같은 서구 선진국들 눈에는 발칸은 슬로베니아부터 시작해서 터키까지 이르는 부분이고, 슬로베니아는 크로아티아에서부터 발칸이 시작한다고 본다. 세르비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같은 무슬림들이 문제라고 본다는 것. (이슬람 = 테러리즘)

결국 발칸이란 말은 되고 싶지 않은 타자, 박멸해야할 외적, 반문명, 비문명과 결부되어 사용되는 예가 많았고, 그 탓에 유럽에서는 공식적 외교문서에서 발칸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이보다 훨씬 가치 중립적인 남동유럽 Southeastern Europe이라는 말을 쓴다.

그래서 그런지 구유고 국가들 저마다 동쪽의 이웃 나라를 '발칸'으로 얕잡아 보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알게된 크로아티아에 시집온지 10년이 되가는 마케도니아 색씨는 완벽한 크로아티아어를 구사하는 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엘리트지만, 크로아티아 정부나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마케도니아인은 그럴 자격이 부족하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가 터지면서 슬로베니아 최대 유통체인인 메르카토르Mercator가 도산지경에 이르렀던 적이 있다. 크로아티아 최대기업으로 유통체인이자 식품가공업체인 아그로콜Agrokor가 인수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번번히 최종단계에서 무산됐다. 슬로베니아 사람들이 토종 국내최대기업이 크로아티아 기업에 넘어가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2012년 만난 슬로베니아 유통업체 인사에게 이와 관련해서 의견을 물어봤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고 했지만, 태도나 언사로 봤을 때 딱 받은 인상은 '머슴이 어디 안방을 들어와?'라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사실 발칸에서만 일어나고 있나? 사람사는 데가 어딘들 다르겠나. 어쩌다 알게된 세계은행 컨트리 매니저와 부부동반 식사(부부가 한국인)를 하는데, 아프리카 출신 월드뱅크 직원들이 한국을 가지 않으려 한다는 말을 한다. 한국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월드뱅크 명함달고 다녀도 인정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 1997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인도 출신 IMF 직원과 같이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가 인도 사람이 제나라나 잘 건사할 것이지 뭣하러 한국에 왔느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더란다. 그 뿐인가 안산 같은 데서 사는 외국인근로자들에게는 온갖 멸시가 쏟아지고, 웹에서는 조선족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데마고그도 한참이다. 최근에는 한동안 호남사람들에 대한 멸시 버릇이 점차 다른 나라나 조선족으로 비화하는 느낌이다.

비단 우리 뿐이랴.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들이 수태 죽어나간 이야기도 결국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근거없는 소문 때문이었고, 기독교 문명권이 유태인을 대대로 이지메하고 핍박했던 것도 유태인들이 애를 잡아먹는다는 둥,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는 둥의 편집증 때문 아니었던가?

'발칸'은 결코 남의 이야기도 아니고 다른 나라 이야기도 아닌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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