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5일 목요일

구유고의 음악 8 : 모스타르에서의 재회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음악으로 이야기하자면 보스니아를 중심으로 한 세브다흐처럼 극적인 변화를 거듭한 장르가 없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신파조의 멜랑콜리 추구'라는 세브다흐의 기본적인 덕목이 1990년대 유고 내전을 거치면서 새로운 설득력을 얻으면서 새로운 음악적 변화를 거듭해 가고 있다.

당금 보스니아에서 세브다흐와 관련하여 가장 대표적인 음악인(집단)은 모스타르 세브다흐 레우니온Mostar Sevdah Reunion(이하 MSR). 프로듀서 드라기 셰스티치Dragi Šestić가 고향 모스타르Mostar 출신 음악인들과 투합하여 만든 프로젝트 밴드다.

2002년 경의 MSR. 앞에서 담배를 들고 있는 사람이 밴드의 보컬 일리야 델리치Ilija Delić옹. 약간의 주책기가 있지만, 담배에 찌든 텁텁한 목소리가 매력포인트다.

모스타르는 보스니아 남부 헤르체고비나의 중심도시다. 이 동네가 재미있는 것은 시내 중심을 흐르는 네레트바 강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주로 무슬림들이 서쪽에는 주로 기독교인들이 살면서 다문화 다종교 사회를 표방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500년 넘게 형성된 이러한 문화적 전통이 1990년대 유고내전으로 산산히 박살나면서, 모스타르는 졸지에 비극의 도시가 된다.

레베카 웨스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찬탄해 마지 않던 오래된 다리가 1993년 내전 한가운데 무너지는 영상이다. 술레이만대제 때 만들어진 이 다리는 모스타르의 자랑이자 상징이었다.  이 다리 폭파 지시를 내렸던 사람들은 2013년 현재 헤이그에서 재판을 받고 있고, 그 폭파 사실이 공소이유의 하나가 됐다.

MSR은 이러한 비극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셰스티치가 유고 내전이 한창이던 때, 모스타르 어느 골방에서 친구들과 더불어 작은 콘서트를 열었던 것이 그 시작이다. '전쟁이 끝나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세브다흐를 알게 될꺼야'. 밴드 멤버 중의 누군가가 그 와중에 했던 말이라고 한다. 그 말은 실현됐다.

1999년 앨범에 수록된 노래 '당신에게 숨어든다'Kradem ti se. 사랑하는 연인의 집에 월장해 들어간 화자의 절절한 심정이 들어있다. 세브다흐의 본래적 의미에 가장 부합한 노래라고 할 수 있겠다. 델리치 옹의 목소리다. 이 때 벌써 60대 중반의 노장이었다.

내전이 끝나고 옛날 친구들을 찾아서 무슬림계 뿐만 아니라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계 멤버들의 재회Reunion를 이뤄낸 리더 셰스티치는 1999년 들어 첫앨범을 내고 세브다흐 장르의 대표주자로 우뚝 선다. 이들 음악의 특징은 세브다흐 고유의 본래적 전통에 서구음악의 영향을 결합시켜 구유고지역 젊은 세대는 물론 세계인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멤버들이 모두 고향을 등지거나 뿔뿔이 헤어지는 비극을 거쳤지만, 이들의 음악에는 세브다흐 고유의 슬픔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의외로 흥겹게 즐길 수 있는 노래들이 많다. 마치 흥을 통해서 슬픔을 극복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2003년 Secret Gate에 수록된 '모스타르의 희한한 슬픔'Čudna jada od Mostara grada. 연인이 마음이 변할까 안절부절하는 여성의 심정을 희극적으로 풀어냈다. 개인적으로는 이 곡이 MSR 최대명곡이 아닌가 싶다. MSR은 이 노래를 보다 '훵키'하게 풀어내기 위해 비트를 2/4에서 4/4박자로 바꿨다고 한다.  이 노래를 듣는 모스타르 청중들의 반응이 물만난 고기같다. 

그러나 2013년 현재 MSR은 Reunion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지금은 갈라선 상태이다. 보컬인 델리치 옹과 더불어 코바체비치(바이올린), 샨티치(아코디온, 클라리넷) 등이 2007년 경 밴드에서 탈퇴해서 자신들만의 MSR을 결성했다. 때문에 2013년 현재는 원 멤버들도 서로 서먹해지고 연락도 안하는 사이가 됐다. 그래서 지금은 MSR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밴드가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그 소상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아무래도 드라기 셰스티치의 독주에 불만을 품은 일부 멤버들의 반란이 아닌가 싶다. 셰스티치는 MSR를 통해 세브다흐 뿐만 아니라 묻혀있던 왕년의 (집시)씽어 샤반 바이라모비치, 릴랴나 버틀러Ljiljana Buttler 등을 재발굴했다. 이들이 다시 부른 노래는 하나같이 왕년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 재해석이 됐다. 허나, 이들 스타에 가려진 보컬 델리치 옹이 섭섭하게 느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 똑같은 이름의 두 밴드는 각자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다만 델리치 옹의 노쇠현상이 심해지고, 드라기 셰스티치의 프로듀싱이 과도하게 실험적으로 흐르는 듯하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초 당시의 밴드가 최전성기였다고 본다. 헤어진 것은 안된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민족감정 때문에 헤어진 것은 아니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셰스티치 솔하의 MSR은 2013년 신작 앨범 'Tales from the Forgotten City'를 냈다. 밴드는 더 젊어지고 노래는 더 모던해졌다. 이 최신작에 수록된 '왜 당신은 여기 없는가'Što Te Nema는 그리운 이의 부재를 그리는 걸작이다.

모스타르에서 촬영된 Što Te Nema 뮤직 비디오. 모스타르 출신 세르비아계 민족시인 알렉사 샨티치Aleksa Šantić의 시에 노래를 붙인 장르 최대인기곡이다. 조국, 연인 또는 한용운식 님의 부재와 결핍을 노래한 이 노래는 크게는 오늘날의 보스니아, 작게는 MSR을 너무 절실하게 그려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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