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9일 일요일

구유고 음악 15: 나는 록스타 Bijelo Dugme

60년대 선구적인 밴드들의 뒤를 이어, 70년대는 록밴드들이 쏟아져 나타나기 시작했다. 팬덤도 커진 것은 물론이다. 봉황이 한마리 나오려면 닭이 천마리 있어야한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록스타가 나타났다. 비옐로 두그메Bijelo Dugme(하얀 단추)다.

비옐로 두그메 초기시절 모습.  중앙에 폼잡고 있는 사람이 베벡, 고란 브레고비치는 맨 왼쪽에 있다. 이 사진에서 아무래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태도다. 불량끼+쇼맨십이 넘치는 이 밴드를 전유고 젊은이들이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비옐로 두그메는 1974년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결성된 5인조 밴드다. 밴드의 중심축은 아무래도 젤코 베벡Željko Bebek(45년생, 보컬)과 고란 브레고비치Goran Bregović(50년생, 기타). 베벡이 69년에 고란을 꼬셔서 이태리 등지에서 밴드활동을 하다가  74년에 비옐로 두그메로 까지 연결이 된 것이다. 

초기에 사라예보의 레이블 디스코톤Diskoton이 뻣뻣하게 나와서 자그레브의 유고톤Jugoton과 계약을 했는데, 디스코톤 입장에서는 유고 팝음악 역사상 최대의 패착을 뒀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1974년부터 1989년 해체 때까지 비옐로 두그메가 내는 앨범들마다 적어도 기십만장씩은 팔렸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약간은 차분했던 유고 록 씬에서 이들은 록스타로서의 아우라와 태도로 록스타처럼 행동했던 최초의 밴드라고 할 수 있겠다.

1978년(79년?) 인민해방군 스타디움 공연 모습. 미쳐날뛰는 청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히 유고식 아레나 록이라 할 만하다. '내 자동차 뒷좌석에서' Na zadnjem sjedištu moga auta.  눈치를 챈사람들이 있는지 모르지만, 가사 내용도 약간 19금적 암시가 있다.

비옐로 두그메의 음악을 두고 유고의 평론가들은 '양치기 록'Pastirski rok(목가록, 전원록...)이라고들 평한다. 포크송적인 요소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데뷔 앨범을 들어보면, 딥퍼플이나 레드제플린 등의 서구 록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가사의 세팅은 '시골'이다. 예컨대는 노래 가사 중에는, '당신과 놀기 위해서라면, 집도 팔고, 영혼도 팔고, 말도 팔고..(말?)', '내가 하얀단추라면... 당신과 붙어있는 것을 동네도 모르고, 엄마도 모르고...', '동네에선 날 주정뱅이라고 하는데, 그건 맞는 말이야. 하지만 어쩌라고?'...

후기로 갈수록 포크송의 영향은 점점 더 강해지는데 세팅뿐만 아니라 테마자체가 음악에 활용되는 빈도가 점점 많아진다. 이 같이 유고록의 중심점에 올라선 비옐로 두그메는 뒤에 따라오는 후배들에게는 하나의 귀감이자 극복의 대상이 됐던 것 같다. 


'잠들지 말아요, 그대여,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엔..'Ne spavaj, mala moja, muzika dok svira. 데뷔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분위기 띄우는데는 딱맞는 락커빌리 넘버로, 베벡의 금속성 목소리하고도 잘 맞는듯 하다.

도시적 감성을 지향하는 후배 밴드들은 두그메의 노래들에 대해서 '가사에 양들이 나오고, 백살까지 산다는 둥'의 가사가 뭔소린질 모르겠다고 대놓고 깠다. 하지만, 사실 당대는 물론 후대의 유고 록음악에서 비옐로 두그메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아마 인기라는 척도로 비교가능한 밴드로는 세르비아의 리블랴 쵸르바Riblja Čorba를 들 수 있겠지만, 시대를 열어간 것은 아무래도 두그메로 봐야할 것 같다. (쵸르바 역시 두그메와 더불어 양치기 록으로 레이블링되기도 한다)

여느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비옐로 두그메의 활동 역시 1991년 유고 내전을 끝으로 거의 해체가 확실해 졌다. 크로아티아계 출신인 베벡은 83년에 밴드를 떠나서 솔로커리어를 추구하다가 지금은 크로아티아에서 살고 있다. 고란 브레고비치는 베벡이 없는 가운데 밴드를 끝까지 이끌다가, 결국  밴드 해체 후 지금은  주로 세르비아에서 활동하면서 현재는 발칸을 대표하는 뮤지션이 됐다.  


포크송의 영향이 가장 강하게 들어간 넘버로 대중적인 호응도 많이 끌어낸 비옐로 두그메 곡으로는, 역시 '성조지의 날'Đurđevdan(또는 에데를레지)을 들 수 있다. 1988년 앨범에 수록된 이 곡은 향후 고란의 음악적 방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참 이때의 보컬은 알렌 이슬라모비치Alen Islamović인데, 2005년 밴드 재결성 공연인 듯 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