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4일 월요일

크로아티아의 역사 1: 기원

우리나라에서 크로아티아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떠올릴 이름은 아마 크로캅이 아닐까 싶다. 크로캅은 2000년대 초반 K1, 프라이드 등 이종격투기 무대를 풍미하면서 크로아티아가 있다는 사실을 많은 한국인(주로 남자)들에게 각인시켰다. 더 나아가 축구팬들은 1998년 월드컵 4강까지 올라갔던 일, 농구 팬들은 90년대를 풍미한 시카고 불스의 식스맨 토니 쿠코치 정도를 떠올릴 수도 있다. 최근에는 광고에도 몇번 등장해서 그런지, 관광대국으로서의 크로아티아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다. '아드리아해에 접해 있는 아름다운 나라'라는....

현대의 크로아티아..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6개 공화국 중의 하나에서 출발한다. 크로아티아의 크로아티아식 정식 국명 표현은 Republika Hrvatske, 즉 흐르밧인들의 공화국이다. 흐르밧Hrvat은 부족민족 이름이다. 크로아티아라는 말은 흐르밧이라는 이름의 라틴식 오독이다. 슬라브말에서는 목구멍 깊숙이 나는 'ㅎh' 발음이 외부 사람들에게는 'ㅋc/k'라는 말로 들렸던 것이 그 연원이다.

오늘날 흐르밧족에게는 오늘날의 이란 부근, 폴란드 남부에서 왔다는 등의 다양한 기원설이 존재한다. 적어도 남슬라브 민족의 일원이었던 이 족속은 기원 후 4-5세기 정도에 오늘 날의 크로아티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이들 스스로가 다른 지방으로부터 온 도래인이었다는 것이다.

크로아티아는 로마시대 이태리의 바로 이웃에 있는 만큼, 로마제국의 땅이었고, 그 만큼 유적들도 많이 남아있다. 지금도 크로아티아에는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궁전 유적 등이 그 가장 대표적인 예다..

크로아티아 풀라Pula의 원형경기장, 기원전후로 만들어졌다. 로마 경기장 중에서 보존상태가 양호한 경기장이다.

스플릿Split에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발칸(오늘날의 몬테네그로 지역) 출신의 황제다. 다스리기 점점 어려워지는 로마제국을 4분할한 황제로 유명하다. 기독교를 박해하기도 했지만, 정작 딸이 기독교 신자로 살다가 박해를 받아 살해당하는 등, 사연이 많은 황제다. 이 궁전은 은퇴 후 살던 곳이다.

로마의 지배 당시, 원래 이땅에는 일리리아Illyria 민족이 살고 있었는데, 로마제국의 힘이 시들해지면서 고트Goth족, 아바르Avar족 등 외부 야만인들이 물을 흐려놓기 시작한다. 이들 등쌀에 일리리아 족이 이리 밀리고 저리 쫒겨날 때, 바로 이 때 슬라브 민족들도 이 지역으로 유입되는데, 흐르밧은 그 민족들 중의 일 족속이었던 것이다.

슬라브 족들이 약탈이 주업이었던 다른 야만 족들과 달랐던 것은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정주를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은 당연히 로마의 지배와 기독교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로마의 황제들은 그래도 이 사람들이 좀 말이 통한다 싶었던지, 아바르 족이나 여타 야만족들을 물리치는 데 이 사람들을 활용하고 이에 따라 정식으로 정주도 허가하는 사례가 나온다.

이 사람들이 역사에 제대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AD 800년 경으로 부족사회의 틀을 깨고 나와서 봉건영주의 틀을 갖춘 리더들이 역사서에 간간히 드러나기 시작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었는지는 불분명한 점이 있지만, 크로아티아 해안가 도시인 닌Nin을 중심으로 이들이 초기국가 형태로 나라를 세웠고, 10세기 초 토미슬라브Tomislav가 달마시아 지방(오늘 날의 크로아티아 남쪽 해변가 지역이다)과 파노니아(헝가리까지 들어가는 내륙의 평야지대)를 통일하면서 교황의 허락 하에 '왕'Kralj이라는 칭호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때가 크로아티아로서는 처음으로 국가 체제가 형성된 때라고 볼 수 있을 듯 할 것 같다.


서기 900년경 유럽의 판도: 프랑크 제국, 동로마 등이 보이지만, 이 때만 해도 불가리아가 발칸의 패왕이었다.
* 자료원 : http://www.euratlas.net/history/europe/fr_index.html

이 때 당시 크로아티아를 근대적 의미에서 독립국으로 봐야할 것인지는 잘 판단하기 어렵다. 왜냐면 시대 자체가 특정 영주의 발흥에 따라 세력판도가 유동적으로 변하는 중세시대이기 때문이다. 봉건영주나 부족들이 그 때 그 때의 이해관계에 따라 신종하는 리더들이 달라졌던 때다. 크로아티아 지역은 비잔틴계 동로마 제국이 주권을 주장했던 적도 있고, 한 때 전성기를 누렸던 프랑크 왕국이 주권을 주장했던 적도 있었다. 다만, 이들의 주장은 실효지배를 의미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자그레브 중앙역 앞 광장에 세워진 토미슬라브왕의 동상 : 크로아티아의 통일왕국을 이룬 위인이지만 정작 역사적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어쨌거나 크로아티아 독립 이후 초대 대통령 프란뇨 투지만Franjo Tudjman 박사 스스로가 크로아티아를 1,000년의 꿈을 담은 나라 thousand year dream of statehood 라는 말로 형용한 만큼,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적어도 이때 당시가 독립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던 때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또 우연찮게도 토미슬라브 이후에는 몇몇 직계 후손을 제외하고 크로아티아 역사에서는 '왕'의 칭호를 쓰는 실력자가 없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크로아티아가 한참 잘나가던 시절에는 오늘날 헝가리를 세운 마자르 족이 발흥하기 시작하고, 가장 전성기를 구가한 토미슬라브왕이 죽고 난 다음에는 힘의 균형이 마자르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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