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9일 수요일

크로아티아의 정서

크로아티아에 온지도 어언 1년 반이다. 뭔가 기록이라도 해놓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조급증이 생긴다. 왤까?

1930년대 발칸지역을 방문한 레베카 웨스트(Rebecca West)는 방문과 기행의 동기가 묘연하다. '그냥'이라고 말하려면 좀 심할까 싶지만, 그의 저작 'Black Lamb and Grey Falcon'(1941)에서는 세르비아의 왕(Aleksandar Karadjordjevic)이 프랑스에서 암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그냥, 뜬금없이 기행을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발칸 지역을 돌아다녔을까? 책이 너무 두꺼워서 다시 읽을 맘이 없지만, 웨스트는 이에 대해 끝까지 모호했다.

후대 사람인 로버트 카플란(Robert Kaplan) 역시 1980년대 발칸 지역을 방문하고, 'Balkan Ghosts'(1993)라는 .기행문을 남긴다. 그는 레베카 웨스트에 비해서는 보다 명확한 동기를 제시하고 있다. 서문에서 글로벌화로 인해 세계가 비슷비슷해지고 있는 가운데, 과거의 기억이 빠르게 상실되어가고 있다는 것. 더 나아가 그는 발칸 지역은 바깥으로 목을 메어 소리쳤지만,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는 쓰고 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역사와 예술 그리고 정치를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서 발칸을 방문했다는게 그의 변이다.

티토가 살아있던 시절, 누구나 다 알고 있던 유고슬라비아. 사람들은 이 지역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질 못했다. 20세기 말에 유고가 붕괴하고, 드럽고 지저분한 내전이 지속된 이유도 결국 누구도 발칸의 정서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제대로 대응할 시기도 놓쳤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서, 발칸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들었고(혹은 강제됐고?), 이곳 사람들도 그럭저럭 '과거는 잊고 잘 지내자'고 하지만, 크로아티아를 포함해서 인근 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깔린 도저한 흐름은 나같은 외지인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미스테리다.

2012년 말 크로아티아의 독립 전쟁영웅 안테 고토비나(Ante Gotovina) 장군이 헤이그 전범재판에서 사면을 받았을 때, 자그레브 여기저기에서 경적소리가 터지고, 도시 전체가 축제분위기에 들어섰던 적이 있다. 헤이그 전범재판이란 과정 자체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롯하여 이곳 사람들에게는 외계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닫히고 불투명한 공간일 수 밖에 없다. 사실은 누구도 깨끗하기 어려웠던 전쟁이기에, 그 결말은 예측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재판소가 무죄라고 평결을 내렸으니, 재판 결과에 대해서는 90% 이상의 크로아티아인들이 환영했다. 그때 같이 일하던 크로아티아인 동료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이런 마음, 바깥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그 때서야 깨달았다. 이쪽 지역 사람들 마음에 다가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친절함, 상냥함, 순수함... 이런 외양적 모습들 저 너머에는 외부 사람들 누구도 알기 어려운 곡절이 있음을...내가 1년 좀 넘는 생활을 하면서 익혔던 이쪽 사람들 민심은 사실은 겉껍데기였음을...

어쨌거나 발칸의 정서를 1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연원과 심연을 드려다보려는 시도 자체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발칸의 내력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것도 아주 헛된 수고만은 아닐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부터 남기는 기록들은 크로아티아는 물론 주변 민족들의 정서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들을 중심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다. 오늘이 어제의 결과라고 한다면 그 단서는 역사에서 찾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이렇게 정리해 놓은 역사가 과연 그 결과로 오늘의 현실을 낳았는지, 아니면 오늘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역사속에서 이해되는 부분만 선택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인지는 아닌지. 결국 발칸의 역사는 이곳 사람들 나름의 몫이다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로 끝을 맺어본다.

댓글 1개:

  1. 좋은 글들 감사합니다 잘 읽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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