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3일 월요일

구유고 음악 3 : 구슬레와 구전서사시

오토만의 지배를 받으면서 자기정체성을 지켰다는 것은 세르비아인들에게는 커다란 자랑이지만, 정작 이들의 역사를 기록한 문건은 그리 많지 않다. 19세기 봉기 지도자들 조차도 문맹들이었으니, 역사에 대한 수요와 공급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 내고,  그것을 정체성의 일부로 체화해 냈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그 해답은 동방정교 교회와 세르비아의 구전서사시가epske pesme다. 교회가 고답적인 문어체 기도문으로 역사를 기록했다면, 구전서사시들은 바로 민간에 즉각적으로 유통됐다는 점에서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원래적으로 시란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낭송하기 위해 있는 것. 세르비아의 음유시인들은 여기에 반주 격으로 구슬레gusle라는 악기를 연주한다.

구슬레. 처음보는 사람에게는 이것을 악기로 봐야할지 아니면 연장으로 봐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단 한가닥의 현, 제한된 음계, 딱히 정해진 음정이나 피치도 없다. 낼 수 있는 피치는 전통적인 방식을 취할 경우 많아야 다섯개. 연주하는 사람의 목소리 높낮이에 따라 튜닝도 바뀌는 인간친화적인(?) 악기다. 세르비아에서만 쓰는게 아니라 크로아티아를 포함한 발칸 전체에 연주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악기의 종주는 세르비아 민족이 많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다.

구슬레, 이렇게 생겼다. 양다리 사이에 끼우고 활을 써서 연주하는 찰현악기다. 우리나라 해금과도 비슷한 구조이지만, 손아귀가 아니라 손가락 만으로 음정을 만들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음계가 그리 많지 않다. 더욱 이해가 안되는 건 세르보-크로아티아어에서는 이 한줄짜리 악기를 복수plural 취급한다는 것.......

음유시인의 낭송을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니면 음악 이전의 그 무엇인가? 정작 들어보면 형언할 수 없는 원초성이 마음을 파고들어 온다. 청중에게는 악기의 단순성이 오히려 메시지의 명징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 주로 세르비아의 역사와 신화, 영웅담들이다. 당연히 가장 인기있는 곡들도 1389년의 코소보 전투 전후의 사정들을 기록한 시가들이다. 지난 번에 언급했던 코소보 신화 역시 음유시인들의 낭송을 통해 전해졌다. (특히 코소보 서사시들은 유고 내전 등의 계기를 통해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영어번역으로 보려면 링크1 혹은 링크2 참조)


그렇다면 박제된 과거의 일만 전해지는가? 구슬레 서사시가들은 세르비아인들에 영향을 끼친 거의 모든 역사적 사건을 노래하는 창구가 된다. 19세기 초 사라예보 암살사건, 티토의 빨치산 활동, 가장 최근에는 유고 내전에 이르기까지, 구슬레 음유시인들이 아니 다루는 주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과거에도 그래왔던 것처럼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오늘날 세르비아 구슬레 씬의 주된 에토스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유고 내전에서 민간인 학살 혐의로 전범으로 지목된 라도반 카라지치Radovan Karadžić, 라트코 믈라디치Ratko Mladić 등을 칭송하는 구슬레 서사시도 심심치 않게 곧 잘 들을 수 있다.

구슬레 음유시인 Guslar 사샤 라케티치Saša Laketić. 세르비아에서 활동 중인 많은 구슬레 가수들이 있지만, 무대 장악력이 좋아서, 그런지 박수도 잘 이끌어 내고, 청중과의 교감이 좋다. 아마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전설적 음유시인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여기서 그는 1914년 1차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 암살사건sarajevski atentat을 노래하고 있다. 

세르비아가 2012년 EU 후보국의 지위를 확보하고, 회원국이 되는 절차를 밟아가는 오늘 날 구슬레 서사는 앞으로 어떻게 변해 나갈까? 이 원초적 목소리가 EU 문명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지 궁금해 지는 지점이다.

2012년 I Got Talent 몬테네그로 프랜차이즈에서는 14살짜리 소녀 Bojana Peković가 출연해서, 능숙한 구슬레 연주와 노래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주로 남성일색의 구슬레 씬에 나타난 귀여운 소녀의 고고성은 세르비아 민족 서사시에 새로운 방향과 기운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어려서 그런지 다른 악기와 합주를 시도하거나, 새로운 음역을 내보는 등 신선한 실험도 하고 있다.

2013년 2월 보야나와 니콜라 페코비치 남매의 구슬레-아코디언 협연 장면. 희귀한 일이다. 구슬레는 다른 악기 사이에서는 거의 음향효과 정도를 낸 적은 있지만, 제한된 음역으로 인해 협연을 불가능했다. 보야나가 과거에는 거의 고정적이었던 손 포지션을 바꿔가면서 새로운 음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 보인다. 이것이 구슬레의 미래?

그러나 이 같은 실험이 구슬레의 미래를 담보할 것인가? 모르는 일이다. 보야나가 알아서 잘 하겠지.

개인적으로는 베오그라드에서 구슬레를 구입하기 위해 물어 물어 장인匠人을 찾아간 적이 있다. 담배가 쩐 아파트 응접실에서 몬테네그로 출신의 장인은 구슬레의 요모조모를 가르쳐 주더니 날보고 이제 여기에 맞춰서 노래를 하라고 권했다. 세르비아말을 못해서 안된다고 하니,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한국말로 하면 될 것 아니냐고.... 살아있는 역사로서의 구슬레의 미래에 대해서 그는 전혀 걱정이 없었다. 나한테는 구슬레 시가의 본질에 대한 작은 깨달음의 계기도 됐다. 구슬레가 없어진다면 세르비아의 매력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질 듯 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