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0일 목요일

구유고의 음악 4 : Balkan Gypsy Brass Band

발칸반도에 집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4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일부는 서유럽이나 러시아 지역으로 지속적으로 퍼져나갔지만, 다수는 아직도 발칸에서 살면서 사회생태계의 최하층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과 살을 맛대보지 못한 우리 입장에서, 집시 하면 생각나는 것은 역시 음악이다. 이들의 음악은 찌고이네르바이젠, 헝가리 무곡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서구 클래식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줬으며, 후대에는 장고 라인하르트를 비롯해 기라성 같은 집시 뮤지션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발칸지역 집시 음악 역시 같은 궤적에 있다고 봐야 겠지만, 가장 눈에 띠는 점은 집시 브라스 밴드의 존재다. 이들 음악은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urica 감독의 '집시의 시간'Dom za vešanje,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등을 통해서도 소개된 바 있다. 이들 밴드는 중요한 축제 혹은 애도의 계기 때마다 등장해서 분위기를 띄우거나 가라앉히는 역할을 했다. 아무래도 음악을 듣는 것이 축제 때가 많다보니 다수의 노래에 축제와 흥분의 톤이 내장되어 있다. 

구유고에서 활동 중인 집시 브라스 밴드 중에서 가장 많은 각광을 받는 보반 마르코비치 오케스트라Boban Markovic Orkestar의 모습. 리더 보반의 아들 마르코Marko도 14살때 학교를 때려치고 가세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브라스 밴드인가? 동유럽 집시하면 바이올린 아녀?

몇가지 이유가 있다. 오토만 터키는 서구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앞서 전문군악대Mehter를 운영했다. 14세기부터 오토만의 서진이 본격화되면서 이들의 악기(주로 나팔과 북)가 이런 저런 경로로 집시들 수중에 들어갔다. 19세기 세르비아가 독립하면서 이들의 악기는 서양식 나팔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근대적으로 조직된 세르비아 군대에서도 군악의 취주를 담당한 계층은 집시들이었다. 더 나아가 척박한 데서 거친 일을 하다보니, 손이 거칠어져서 현악기보다는 관악기 쪽이 이들에 맞았다는 설명도 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브라스 밴드가 많다 보니, 세르비아에서는 오늘 날도 구챠Guča에서 매년 8월 마다 트럼펫 축제가 열리는데, 이게 왠만한 서유럽이나 미국 록 페스티발 저리 가랄 정도로 규모가 꽤 크다. 

이들 음악은 이것 저것을 섞은 잡탕처럼 보이지만, 족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19세기 발칸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초첵Čoček 장르의 주요담지자들이다. 터키식 오리엔탈 멜로디, 강력한 비트(4/4, 7/8, 그리고 집시 9이라고 불리는 9/8박) 등이 주요 특징이다. 댄스비트의 경우 벨리댄스와도 결부되기도 한다.

구유고 지역에서 가장 인기있는 집시 브라스 밴드를 꼽으라면, 단연 세르비아의 보반 앤 마르코 마르코비치 오케스트라Boban & Marko Marković Orkestar다. 다음 영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10년 구챠 트럼펫 페스티발에서 이들의 라이브 장면은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집시 브라스 음악이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보반 앤 마르코 마르코비치 오케스트라. 연주곡은 쿠스투리차 영화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칼라시니코프Kalašnjikov다. 브라스 밴드 역시 여느 록밴드 못지 않게 사람들을 미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이것이 집시 브라스 밴드의 전통적 기능이었을 것이다.


약간 발칸의 궤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최근에 뜨는 집시 밴드로는 팡파레 초카를리아Fanfare Ciocărlia를 빼 놓을 수가 없다. 루마니아 집시들인 이들은 독일 음반제작가들에게 최근에 '발견'되기 전까지 동네 섬유공장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루마니아 깡촌에서 조차도 지켜낸 이들 음악의 매우 높은 완성도다. 이들은 2011년 마르코비치 오케스트라와 공동음반 발칸 브라스 배틀Balkan Brass Battle(Asphalt Tango 발매)을 내놨다. 두 밴드의 경쟁심으로 시종 긴장감이 팽팽한 명반이다.  공산주의 시절 전혀 만날 수 없었던 두 밴드가 얼마나 동일한 음악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순간이다.

2011년 부다페스트에서 이 두 밴드가 만나서 같이 공연했다. 영화 007 테마를 주제로 만든 곡인데, 대중에 어필하는 곡인데도 어쨌건 집시식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이게 꽤나 흥겹다. 청중의 반응도 즉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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