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0일 금요일

구유고의 음악 11 : 몬테네그로 전사의 노래

몬테네그로에는 지난 번에도 소개했던 구슬레 서사시를 부르는 악사Guslar가 유난히 많다. 소박한 악기 자체가 공교롭기 어려운 산악의 단순한 삶에 잘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몬테네그로가 배출한 최고 시인 네고쉬도 '구슬레 소리가 나지 않는 집은 죽은 집'이라고 읊었을 정도였으니, 구슬레가 몬테네그로에서 가지는 의미가 알쪼다.

몬테네그로인들이 구슬레를 연주하면서 읊었던 서사시 중에는 영웅을 찬탄하는 류의 서사가 많은데, 이번에 소개할 '밀로 요보비치 사제의 죽음'Pobigija (또는 Smrt) Popa Mila Jovovića가 가장 대표이라 할 수 있겠다.

원초적 단순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구슬레 연주 버전의 '죽음'. 여기 소개하는 것은 1부고 2부까지 합치면 장장 20분이 조금 모자라는 서사시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를 모르면서 끝까지 듣기가 어렵다. 

내용인 즉 이렇다.

"닉시치Niksić(오늘날 몬테네그로 도시들의 대다수는 19세기까지 오토만 터키 지배하에 있었다. 닉시치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은 몬테네그로 대표브랜드 맥주를 만드는 동네다) 공략을 모의하던 몬테네그로 진영에서 누군가 밀로 요보비치 사제를 중상하는 소문을 퍼뜨린다. 이런 참언을 들었기 때문인가? 부족의 족장이 여러 전사들 앞에서 밀로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대는 술도 아니고 물도 아니로다.' 요보비치 사제는 이 말을 듣고 분기탱천, 분노에 몸을 떤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홀연 총칼을 차고 닉시치로 향한다.

닉시치 성문 앞에 선 요보비치. 터키 경비병들에게 말한다. '무쇼비치 대장kapetan 나오라 그래'. 이 말을 듣고 나온 무쇼비치 수비대장. '웬 일이야? 항복하러 왔으면 환영이야'. 요보비치가 답한다. '쓸 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당장 나와. 나랑 결투다!' 하지만 요보비치의 명성을 알고 있는 대장은 부하들을 시켜 성문 앞 요보비치를 저격한다.

총을 맞고 말에서 떨어진 요보비치의 목을 따라 터키의 병사들이 몰려나오고, 그의 목은 닉시치 탑 위에 걸린다. 그 날 밤 병사들 사이에선 잔치가 벌어지고, 터키식 하렘의 여인들은 창문 넘어 유명했던 영웅의 머리를 호기심 어린 듯 바라본다. 요보비치가 홀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몬테네그로의 전사들이 땅을 치며 울음을 터뜨린다."

시가의 형태로 음미하지 않고 줄거리만 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노래에서 몇가지 몬테네그로의 단면을 포착할 수 있다. 성직자가 전사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 재미있다. 성직자 중에는 일자무식꾼도 많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개인적 용맹과 명예는 몬테네그로 부족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였다. 이를 지키기 위한 분노의 표출은 남자라면 응당해야할 사회적 행동이었다. 남성중심적 문화를 여기서 읽을 수 있다면 빙고! 군사적으로는 득도 있지만 실도 크다. 몬테네그로의 전사들은 산악 게릴라전에는 능했을지 몰라도 공성전과 같이 고도로 조직화된 군사적 행동에는 약했다.

이 오래된 노래는 80년대 등장한 몬테네그로 출신 랩퍼/로커 람보 아마데우스Rambo Amadeus가 모던한 랩으로 리바이벌한 적이 있다. 장장 20분 짜리 서사시가 5분 짜리 랩으로 축약되는 순간이다.

80년대 유고슬라비아 락씬에 데뷔한 람보 아마데우스는 B급 정서에 기반한 풍자적 노래도 곧잘하고 전통적 요소와 최신 유행을 결합시킨 곡을 다수 발표했다. 90년대 세르비아를 풍미한 '투르보 포크'turbo folk라는 말도 그가 만들어낸 말로, 짧은 말로 사회의 단면을 잡아낼 줄도 알았다. 지금도 활동 중이다. 2013년 몬테네그로를 대표해서 경제위기에 빠진 EU를 풍자하는 Euro Neuro로 유로비전 송 컨테스트에 나가고자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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