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2일 일요일

몬테네그로 잡설 7 : 몬테네그로의 부족들

20세기 초까지 몬테네그로 사회의 근간은 부족시스템이었다.

커다란 혈연적 범위 내에서 부족pleme(tribe)이 있고 그 아래 보다 응집력이 강한 소집단으로 씨족bratstvo(clan)이 있다. 예컨대는 이런 거다. 페타르 1세의 경우 녜구쉬족Njeguši의 페트로비치씨족Petrović clan에 속했다. 녜구쉬족은 몬테네그로에서 유서깊고 뼈다귀가 있는 부족이다. 그에 소속된 페트로비치씨족은 18세기부터 블라디카 직을 세습했고, 나중에는 국왕까지 배출했으니 그 중에서도 명망씨족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녜구쉬족이라고 페트로비치 씨족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베네치아가 몬테네그로에 부러 선사한 지사guvernadur직은 녜고쉬족의 라도니치씨족Radonjići에 세습되면서, 양 씨족의 갈등은 몬테네그로의 지배구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올드 몬테네그로, 그러니까 페타르 1세 시절 제타강 넘어 브르다를 합병하기 이전의 부족 분포도. 1번지역이 체티녜Cetinje족, 2번이 명문 녜구쉬Njeguši족, 6번이 오즈리니치Ozrinići족의 영토


1796년을 기점으로 몬테네그로와 융합하게 된 브르다 지역의 일곱부족 중에서 숫적으로도 많고 가장 용맹스럽고 호전적이라는 평판을 받는 족속은 바소예비치족Vasojevići이다. 이 부족 출신으로 우리가 알만한 인물을 몇명 꼽아보자.

19세기 초 들어 형성된 부족 세력도. 올드 몬테네그로라고 지정한 부분이 바로 위의 지도에 해당하고 더 나아가서 브르다의 일곱 부족, 바소예비치, 피페리, 쿠치 등이 몬테네그로의 영역 안에 들어왔다.

기억 나시는가? 이 블로그의 앞에서 언급한 세르비아의 창업자이자 카라조르제비치 왕가의 비조 카라조르제다. 그 스스로는 세르비아에서 태어났지만, 그 조상은 몬테네그로 바소예비치족 출신이다.

카라조르제는 세르비아 1차봉기 당시부터도 그 격렬한 성격과 용맹+흉폭함으로 잘 알려져 있어 바소예비치 집안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약간은 옆으로 새는 이야기지만, 카라조르제는 전형적인 세르비아 인간형의 한 축(하이랜더형)으로 곧잘 언급되고는 한다. 이에 반해 2차봉기를 주도했지만 타협과 정치를 통해서 세르비아의 독립을 이끈 밀로쉬 오브레노비치는 그 반대적 형질(로우랜더형)을 대표한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1990년대 유고내전의 제1원흉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결국 헤이그에서 전범재판 중에 죽었다.

이 사람은 몬테네그로에서 태어났고 그 중에서도 바소예비치족의 혈통이라고 한다. 그런데 용맹함이나 용감함보다는 교활한 정치공학으로 집권했다. 하지만, 이 양반이 1989년 코소보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에 기댄 연설을 했을 때, 많은 세르비아인들은 그가 카라조르제에 못지 않은 순수하면서도 원초적인 투쟁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매우 놀라운 일이지만, 레지던트 이블 씨리즈의 히로인 밀라 요보비치도 바소예비치의 후예라고 한다. 아빠가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엄마가 우크라이나인이다. 몬테네그로인들은 남녀모두 잘났다는 평판을 듣고 있는데, 그에 부끄럽지 않은 딸이 태어난 셈이다. 과거 구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스스로를 러시아, 우크라이나, 몬테네그로인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한다.


바소예비치족은 카라조르제 등이 자신의 혈족인 탓이었는지, 강한 세르비아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해서 2006년 독립을 두고 몬테네그로에서 국민투표가 벌어졌을 때, 바소예비치족의 근거지에서는 압도적인 반대표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이 같은 혈통 그 자체가 민족의 순수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중에는 알바니아 혈통의 부족이  세월이 흐르면서 몬테네그로/세르비아계로 전환하는 일이 있었다. 예컨대 올드몬테네그로의 동북방 경계인 제타강 넘어 브르다 일곱 부족 중에 볠로파블리치Bjelopavlići족의 조상 비옐로 파블레Bijelo Pavle는 원래 알바니아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웃 알바니아 산중 부족과의교류, 동맹과 적대의 역사가 복잡다기한 융합, 포섭, 분화의 과정을 거쳐서 몬테네그로의 부족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민족이라는 이미지만한 허상이 없다. 어떻게 보면 그런 허상을 기본으로 근대국가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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