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9일 일요일

몬테네그로 잡설 8 : 산상의 르네상스맨

페타르1세는 몬테네그로에서 단순히 땅만 넓히는 역할 만 했던 것은 아니다. 구황 작물인 감자를 몬테네그로로 들여온 것도, 빈민 구제에 교회의 역할을 강화한 것도, 더 나아가서는 부족적인 틀을 벗어나 뭔가 뼈대가 있는 정치 체제를 구축하려 했던 것도 다 그의 공적이다.

그러나 후계를 정하는 것 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후계자는 페트로비치 일족에다 성직자에다가 배운것도 많아야 한다. 후계자 1은 러시아에서 유학보냈으나 병에 걸려 죽었고, 후계자 2는 기껏 러시아로 보내놨더니 사제보다는 사관이 되고 싶다고 해서 어쩔수 없이 후계구도에서 떠나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이러다가 1830년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페타르1세가 죽고 말았다.

권력의 공백기. 몬테네그로 산중 씨족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베네치아가 부여한 바, 지사guvernadur직을 세습하는 라도니치 일족이 들썩이자, 기왕에 잡은 권력을 놓칠 수없었던 페트로비치 문중이 나서서 가문의 17살짜리 청년 라데 토모브Rade Tomov를 서둘러 사제로 만들어 블라디카로 선출했다. 사제로 서품을 받으면서 아예 이름도 아저씨를 따라 페타르Petar로 바꿨다. 그러니 이 사람은 페타르 2세Petar II가 되는 것이다. 후세에는 녜고쉬Njegoš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바로 그 사람이다. 왜 궂이 녜고쉬라는 부족명을 성처럼 썼을까? 그것은 러시아를 방문해서 황제를 알현하다가 붙인 습관이란다. 페타르 페트로비치. 러시아어를 배운 사람은 페트로비치 같은 남슬라브의 성씨가 러시아에서는 누구의 아들을 지칭하는 파트로님patronym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녜고쉬라는 부족이름을 붙임으로서 적어도 러시아인들을 헷갈리게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녜고쉬의 초상. 2m가 넘는 거구에 영화배우 못지 않은 미남이다. 가히 몬테네그로 전사들의 이상형이라고 할 만도 하다. 이전까지의 블라디카가 주로 사제복을 입고 살았다고 한다면, 녜고쉬는 성직자임에도 불구하고 몬테네그로 전통의 속복을 즐겨입었다. 

19살 되던 해 1933년 녜고쉬는 러시아를 방문하고 메트로폴리탄으로서의 서품은 물론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약속 받았다. 1834년에는 죽은 아저씨 페타르1세를 성인으로 추대했다. 물론 거국적 성원을 받는 조치였지만, 아직은 어리고 약한 자신을 다잡고, 더 나아가서는 페트로비치 일족의 권력 장악을 공고하는 역할을 했다.

더 나아가 이제까지 몬테네그로 부족사회에 없던 '세금'을 도입했다. 도입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에 대한 부족들의 불만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안그래도 없어서 산아래 노략질까지 하는데 세금은 무슨 세금.... 반항하는 부족들에게는 가차없는 처벌이 내려졌다. 국가의 세금으로 펀딩한 경찰 및 경호병도 두고 무엇보다 고리타분한 수도원에서 벗어난 궁전도 만들었다.

녜고쉬가 건설한 블라디카의 궁전...이라기보다는 사저 빌랴르다Biljarda. 녜고쉬가 산길을 뚫고 당구대를 갖다놨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산중 문화를 풍성하게 만들고자하는 것이 그 의도였다는 데, 19세기 당대의 궁전에 비교해서 매우 투박하다. 게다가 녜고쉬를 방문한 외국 손님들은 궁전 주변에 걸어놓은 무슬림들의 목때문에 아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집중된 권력으로 변사또 짓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몬테네그로 역사에서 처음으로 '학교'를 도입했다. 원로들로 구성된 자문기구도 만들었다. 경찰도 창설해서 몬테네그로인들 간의 사적인 복수를 제어코자 했다. 한마디로 그의 치세에 블라디카의 세속적 권력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 녜고쉬 당대에 땅을 늘리거나 뭐 이런 것을 한 것은 없지만, 적어도 다음 대가 공고해진 권력을 바탕으로 튀어나갈 기틀은 만들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녜고쉬가 이쪽 지역 사람들에게 오래 오래 기억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시인으로서의 업적이다. 녜고쉬가 1847년에 발표한 장편서사시 산중화환Gorski Vijenac(Mountain Wreath)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를 중심으로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안그래도 19세기 초반은 민족주의 바람으로 인해 유럽 군소민족의 가슴이 벌렁벌렁해질 때였다.

녜고쉬의 산중화환은 세르비아 민족주의 정념을 표현한 걸작으로 숭앙받고 있다. 합스부르크 황태자를 암살한 가브릴로 프린찝은 아예 이 시를 통째로 외웠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녜고쉬도 이 시를 세르비아의 국부(실제로 녜고쉬가 쓴 말이다) 카라조르제에게 헌정한다.

서사시이며 등장인물이 명확하기 때문에 산중화환은 연극이나 영화로도 만들 수 있는 구조다.  1997년 세르비아와의 갈등이 커진 몬테네그로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서 올렸다. 반오토만/범세르비아 민족주의를 표방한 이 작품의 초연에는 몬테네그로 그랜드 무프티가 초대를 받았다고 한다. 아이러니다.  

줄거리는 이렇다. 산중의 부족들 간의 회의가 소집되는 날, 블라디카 다닐로는 어지러운 마음을 주체 못한다. 극심한 고독감(오토만 터키에 포위된 데 따른) 그리고 그 가운데 버릴 수 없는 사명감(기독교를 지켜야 한다는) 사이에서 다닐로는 번뇌하고 있는 것이다. 당면의 이슈는 무슬림으로 개종한 몬테네그로 종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주인공으로 등장한 블라디카 다닐로는 이들에게 회심과 (역)개종을 권한다. 이들이 이를 거부했을 때, 다닐로가 취한 길은 절멸의 길이었다.
As wide and long that Cetinje Plain is, not one witness was able to escape to tell his tale about what happened there. 
20세기 후반 유고 내전에서 야만적이기 그지없는 인종청소가 자행됐을 때, 사람들은 다시금 녜고쉬와 산중화환을 마치 예언처럼 떠올렸다. 내전도 끝난 지금 녜고쉬의 시를 어린 백성의 순진하지만 야만적인 자기표현이라고 봐야 할까? 굳이 변론을 하자면 누구도 역사를 넘어 사는 사람은 없다는 말을 해야겠다. 녜고쉬나 몬테네그로의 부족들이나 가파른 산중에서 오토만 터키와 사활을 건 쟁투 중이었다. 누구 하나 몬테네그로의 독립을 인정해주는 열강이 없었다. 고립무원 속에서 '자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는 길은 결국 손에 와닿고 가슴에 절실한 말을 하는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단일민족/국민국가로 나가는 길이 그것 밖에 없었냐는 물음은 우화를 실화로 착각한 후대에 할 질문이다.

어쨌거나 녜고쉬는 시를 발표한 지 3년 후 1851년 서른 여덟의 나이로 죽었다. 척박한 몬테네그로에 태어난 르네상스맨이었다. 민족주의자에 잘 맞는 낭만주의자로 그를 묘사할 수도 있지만, 그는 처한 현실은 낭만주의가 발붙일 역사적 배경이나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실제로 그가 표방한 시적 지향은 결국 당대 낭만주의적 아이디얼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기에 그만의 독특함이 있다. 그가 죽기 전에 오스트리아의 어느 시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하지만 일단 사람이 자신을 넘어서게 되면 모든 인간의 빈곤상을 보게됩니다.... 시란 풍우의 연안에서 외치는 유한한 인간의 비명이요, 시인이란 황야의 외로운 고함일 뿐입니다.  - But once man rises above himself, then he sees the poverty of all things human... a poem is the cry of a mortal from this stormy strand of ours, the poet is a voice crying in the wilderness.

한 (유사)국가의 정치지도자가 하기에는 궁상스러운 언사다. 그의 시가 보편적 인간의 대의에 복무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의 고독과 인간의 실존에 대한 고민은 진정했던 것이다. 성직자도 문맹이 많은 몬테네그로 사회에서 나온 그의 시작들은 그야말로 작가적 저작의 시작이라고 할 만한 큰 업적이었으니 가히 산골짝이 배출한 르네상스맨이라 할 만 하다. 그는 죽을 때 로브첸 산 정상의 작은 교회당에 묻히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는 그 자리에 묘당mausoleum을 만들어 그를 기렸다.

로브첸Lovćen산 정상에 마련된 녜고쉬 묘당. 몬테네그로인들에게는 백두산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묘당 아래까지 찻길이 마련되어 있지만, 상태가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맑은 날에나 갈 수 있다. 올라가 본 사람 말에 따르면 경치가 끝내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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