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4일 금요일

유고 삼국지 1 : 2차 대전과 독일의 침공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2차대전은 1차대전과는 전혀 다른 무게감으로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다가왔다. 일단 겁을 먹은 섭정이 '중립'을 선언했지만, 어떻게 하면 '이 좋은 것'을 실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책이 궁했다. 1940년에는 1차대전 때 세르비아에 군수품을 지원했던 우방 프랑스까지 떨어졌다.

1941년 노크도 없이 들이닥친 독일군에 깨진 유고 전차. 위력적...이라기보다는 앙증맞다는 생각이 든다.


1941년이 되자 독일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절륜구라빨을 자랑하는 히틀러가 섭정 파블레를 불러서 무려 다섯시간을 혼자 떠들었다. 중립을 풀고 3국동맹에 가입하라는 취지. 히틀러는 일단 이렇게 엮어서 후방을 정리하고, 소련으로 처들어가자는 복안이었다.

망설임 끝에 협정에 조인하기로 했지만, 전통적으로 독일에 반감이 컸던 세르비아인들이 이를 좋아할리가 없었다. 1941년 3월 협정 조인식에서 히틀러는 유고 대표단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슬라브놈들, 장례식이라도 온 것 같구만'. 일단 이걸로 대충 유고문제는 정리됐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여러가지로 불만이 많던 왕국의 군부가 3월 27일 쿠데타를 일으켜 섭정 파블레를 쫓아내고 아직 미성년자인 페타르 2세를 옹립한 것이다.

사고는 쳤지만 군부라고 뾰족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은 독일에는 '이번 거사는 순수 국내사정으로 인해 벌어졌고, 기왕에 맺은 협약은 존중할테니 걱정마시라'고 전보를 쳤다. 시간을 벌자는 속셈이었지만, 길길이 날뛰는 히틀러는 어쩔수가 없었다. 오스트리아가 고향인 히틀러는 원래부터 슬라브를 '하등민족'으로 보고 있었다. 이것들이 감히.... 쿠데타가 난지 열흘이 안된 4월 6일 군사를 일으켜 유고를 친다. 이름하야 '징벌작전'Operation Punishment. 통상적으로 뜬금없기 마련인 작전명에서도 우월의식과 편견의 결이 잡힌다.


유고의 군주 페타르 2세. 그냥 소년왕이 아니라 미소년왕이라고 해야할 듯 하다. 왕위에 올랐을 때가 17살이었다. 독일군 쓰나미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 임시정부를 차렸지만, 위기를 헤쳐나가기에는 너무 경험이 없었다.


19세기 이후 들어가는 싸움마다 손해보는 장사가 없었던 유고왕국이었지만, 전격전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전쟁개념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조리돌림 당하듯 밀리다 미성년왕이 14일날 해외로 튀고, 남아있는 각료들이 17일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열흘 남짓 버틴 셈이다. 폴란드 함락이 35일, 프랑스 함락이 43일. 아무리 속도가 특징인 전격전이라지만, 이건 좀 심했다. 유고는 졌다기 보다는 녹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해서 유고를 접수한 독일, 많은 병력을 유고 산골짝에 묶어둘 뜻이 없었다. 마음은 이미 러시아 벌판을 달리고 있었거든. 어떻게 하면 뒷설거지를 피할것인가. 첫째, 하는 짓 마다 믿음은 안가지만 일단 이태리가 있었다. 선심 쓰듯이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그리고 달마시아 관리를 맡겼다. 둘째, 크로아티아를 분리독립시켜서 순혈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인 우스타샤에게 넘겼다. 보스니아는 덤이다. 세째, 세르비아에는 헛껍데비 괴뢰정부를 만들어 놓고 전권특임대사를 심어놨다. 네째, 슬로베니아는 어차피 숫자도 적고 하니 이태리랑 반으로 나눠 어영부영 동화시키자는 심산이었다.



1941년 직후 지도. 복잡하지만 이렇다. 독일이 이태리와 더불어 슬로베니아를 합병. 이태리는 달마시아, 코소보 등을 병합하고 몬테네그로를 보호령화. 크로아티아가 보스니아, 슬라보니아를 어우르면서 독립 크로아티아NDH 건국. 세르비아는 괴뢰정권 하 독일 점령. 나머지는 헝가리, 불가리아 등 동맹국들에 나눠줬다.


잘 되야할 텐데.. 다음은 소련이다. 히틀러는 이렇게 앞으로 펼쳐질 드라마의 밑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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