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6일 수요일

유고 삼국지 3 : 우스타샤의 폭주

1941년 독일의 유고슬라비아 침공 이후 세력판도에서 가장 빠르게 자리를 잡은 것은 역시 같은 파시스트들인 우스타샤들이다. 유고를  점령한 나찌독일은 당장은 우스타샤에게 크로아티아를 넘기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고 한다. 우스타샤Ustaša의 대중적 기반이 너무 취약한 것도 문제였지만, 너무 오랫동안 무솔리니의 보호를 받았던 것도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스타샤 심볼. '봉기'라는 뜻의 우스타샤 첫 글자 U에 십자가를 그려넣은 형상이다. 우스타샤는 무식한 만큼이나 신심이 강했다. 요새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지에서 길거리 그래피티 등으로 가끔 보인다. 도저한 역사의 흔적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나찌독일이 먼저 접근한 것은 크로아티아에서 대중기반이 탄탄한 농민당HSS이었다. 만약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면, 초대 당수 라디치Radić 이후 크로아티아에서는 거의 절대적 정치적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농민당이 적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라디치의 후계자 블라드코 마첵Vladko Maček은 유고슬라비아 왕국 측과의 오랜 협상을 거쳐 세르비아-크로아티아 간의 권력분할 협정Sporazum을 체결한 사람이다. 때문에 2차대전이 났을 때만해도 그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부수상이었다. 영국에 망명정부를 세운 카라조르제비치 왕가를 버리고, 점령군에 협력하는 것이 꺼림직했던 것 같다. 마첵은 정중히 거절한다. 그럼, 차례는 우스타샤에 돌아갈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우스타샤는 이의없다. 독일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그 수령 파벨리치가 자그레브를 입성한 것이 4월 15일의 일이다. 입성해서 당장 한 일이 독립크로아티아Nezavisna Država Hrvatska(NDH)를 선포했다. 물론 자신은 그 수령Poglavnik이다. 평소 슬라브인들을 경멸하는 독일인들의 눈치를 본 탓인지 그는 크로아티아 민족은 어쩌다 슬라브 언어를 쓰게 된 동고트족이라는 해괴한 개드립을 쳤다.
 국호를 독립크로아티아라고 까지는 했지만, 우스타샤 정권은 내정 외치 등 어느 면에서도 홀로 '독립'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나라를 반쪽으로 나눠 북쪽은 독일의 영향권, 남쪽은 이태리 영향권으로 분리하고, 독/이 양대 파시스트 군대의 주둔과 작전을 허용했다.

또 설명하기 복잡한 지도다. 크로아티아를 반분해서 독일과 이태리의 영향권으로 나뉜 모습이다. 짙은 회색으로 표시된 해변지역은 아예 이태리로 넘어갔고, 노란색 부분은 명목상 NDH에 주권이 있었지만, 이태리는 크로아티아군의 주둔을 막았다. 이태리는 원래 합병지역에만 군대를 주둔시킬 계획이었으나, 우스타샤 폭주가 시작되면서 이 노란색 부분에까지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우스타샤 X맨이 맞는거다.

같은 파시스트라고 하더라도 독일과 이태리의 전략적 접근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이태리 쪽이 '땅'과 과거의 영화에 집착했다고 한다면, 독일의 접근은 철저히 실용적이었다. 발칸에서 나오는 자원 확보, 그리고 자그레브-베오그라드-테살로니키로 이어지는 철도보급선 확보가 이들의 주요 목적이였다. 따라서 독일군이 NDH 여기저기 포진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사라예보에 1개사단 만을 남겨두고 우스타샤가 그리고 크로아티아내 독일계로 구성된 '로컬' 돌격대가 이들의 주력이었다.


그럼 열강들과 대충 판을 짰으니, 이제 슬슬 국내를 정리할 때가 됐다. 히틀러가 유태인들을 미워하니까, 따라서 미워하기는 하는데, 유태인보다 더 미운 족속은 세르비아인들이다. 어떻게든 쫓아내야 겠다. 그래서 나온 것이 '1/3론'이다. 크로아티아에 있는 세르비아계의 1/3은 죽이고, 1/3은 개종시키고, 1/3은 쫓아 낸다는 소리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스타샤는 무슬림들에게 접근했다. 1차대전 후 토지개혁으로 땅을 빼앗긴 일부 무슬림들이 옳타꾸나 편승했다. 우스타샤들이 폭주하면서 세르비아 촌락을 쑥대밭을 만들기 시작하자, 진짜로 일부는 개종하고 일부는 도망가기 시작했다.


2 차대전도 끝난지 한참되는 2013년 월드컵 예선 경기. 크로아티아 대표팀 주장 요십 시무노비치Josip Simunović가 결선진출이 확정된 것이 기뻤던지, 홈스타디움을 메운 관중들에게 구호를 선창했다. '조국을 위해!'Za dom. 여기에 관중들이 화답했다. '준비끝!'Spremni! 기분좋자고 한 일인데 이 일로 FIFA는 시무노비치의 월드컵 본선 출전기회를 박탈했다. 이게 우스타샤 구호였거든...


그런데 이게 제대로 된 나라가 할 일이 아니었다. 이 때 NDH에 있는 세르비아계는 190만 정도니까 전체 인구의 1/3가량이다. 이 인구를 쫓아내면 누가 물산을 만들고 누가 세금을 내나? 게다가 여기저기 주요 세르비아계 거주지를 중심으로 당장 봉기가 터졌다. 오래된 지역 자위세력 체트닉들이 여기저기서 조직됐다.

자그레브 주재 독일 사령부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소련침공이 준비되는 마당에 NDH에 군사력을 박아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1941년 6월 쯤에는 아예 본부에 전문을 쳤다; '우스타샤놈들, 완전 미쳤음.' 이태리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배후지에서 세르비아인들이 도륙나기 시작하자 그 영향이 주둔지까지 미치기 시작했다.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 보다 못한 이태리군이 우스타샤 세력을 무장해제까지 시키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렇게 해서 지역을 안돈코자 앉힌 우스타샤가 뜻하지 않은 X맨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세르비아계 저항세력이 일부는 체트닉으로 일부는 공산당에 합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무슬림계나 크로아티아계 역시 우스타샤에 대한 초기의 기대와 믿음이 깨지기 시작했다. 세르비아계에게는 그래도 체트닉들이라고 있었지, 무슬림계나 크로아티아계나 불길처럼 일어나는 내전 속에서 갈데가 없었다. 공산당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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