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5일 화요일

구유고의 집시 3 : 영화 속 집시 1 - Skupljači Perja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다수 집시영화들이 나와서 국제무대에서 각광을 받았다. 1967년작 '거위털 수집상'Skupljači perja은 깐느 그랑쁘리 수상작이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영화감독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urica 역시 집시들을 소재로 '집시의 시간'Dom za vešanje (1989)으로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이것 말고도 Anđeo Čuvar(1987), Crna Mačka Beli Mačor(1998), Ciganska Magija(1998) 등 (구)유고산 집시 영화는 허다하고 반향도 크다.

평론가들은 이들 영화가 집시를 소재로 하고는 있지만, 집시에 의한, 집시를 위한, 집시의 영화가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외부자의 시각으로 외부자를 위해 만들어진 집시 영화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 영화들에 대해서는 서구 중심부의 이목을 끌기 위한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라는 비난도 있다.

어떻게 보면 주변부의 비애다. 우리나라도 해외에서 각광을 받으려면, '만다라', '서편제'처럼 서구의 이국취향을 살려주거나 아니면 '섬', '올드보이'처럼 폭력적으로 충격적이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어찌 됐건 집시들을 서커스 곰처럼 부린 것도 아닌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랴.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유고슬라비아처럼 내부사회 문제를 까밝힌 나라도 많지 않았다는 것도 생각해 줘야 한다. 집시에 의한 집시를 위한 집시의 영화는 집시들이 직접 만들면 된다.

유고슬라비아 영화를 세계무대에 제대로 선보인 첫번째 영화가 바로 '거위털 수집상'Skupljači perja(영어로 Feather Gatherers)이다. 영어 제목은 '나는 행복한 집시를 만났네'(I Even Met Happy Gypsies)다. 왜 이런 차이가?  Feather Gatherers라는 직업 자체가 서구에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행복한 집시들을 만났네'는 집시들의 송가 젤렘 젤렘Djelem Djelem에 나오는 가사의 한 구절이다. (젤렘 젤렘에 대해서는 링크 참조)

영화 포스터.

영화 내용은 이렇다. 물론 스포일러 주의다.

무대는 보이보디나Vojvodina. 예전에 헝가리 땅이었다가 1차대전으로 세르비아에 귀속된 지역이다. 세르비아 말고도 다양한 민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는 집시들의 언어인 로마니, 세르비아어 말고도 헝가리어 등 다양한 언어가 등장한다. 때문에 세르비아에서도 자막없이는 이 영화를 이해하기 힘들다..

주인공인 집시 보라Bora는 인근 농가로부터 거위 깃털을 수집해서 파는 장사꾼이다. 젊고 힘도 세다보니 술-도박-여색의 3박자에 거칠 것이 없다. 이미 자기보다 연상의 마누라가 있지만, 나쁜남자답게 대드는 마누라에게는 구타가 약이다.

보라. 짐승남이라고 이마에 쓰여있다. 

보라는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시 처녀 티사Tisa를 좋아한다. 동업을 하는 미르타Mirta의 의붓딸이다.

보라가 좋아하는 티사. 실제 집시인 고르다나 요바노비치Gordana Jovanović가 맡았다. 영화를 찍을 때까지 전문배우가 아니었다.

티사는 관습과 부모의 주선에 따라 동네 어린애에게 시집가지만, 신랑이 너무 어린 바람에 합방에 실패. 결혼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보라는 이 때다 싶어 미르타에게 티사를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 하지만 미르타는 이를 거절한다. 왜냐. 그 스스로가 티사한테 흑심이 있었거든.

딸을 다오. 싫다 새꺄.

아니나 다를까. 티사를 겁탈하려던 미르타, 마누라가 말린 덕에 미수에 그친다. 티사는 도망과 곡절 끝에 보라와 만나 교회당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다. 이에 빡친 미르타, 보라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그 사이 티사는 보라의 마누라가 준 돈으로 베오그라드로 도망갔다가 이도 저도 못하고 거리에서 겁탈만 당한채 결국 다시 미르타에게 돌아온다.

티사를 찾아다니던 보라, 티사가 다시 미르타에게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복수에 나선다. 깃털 수북한 작업장에서 만난 두 사람. 격투 끝에 미르타는 죽고, 보라는 도망에 나선다. 마지막 장면은 유고슬라비아 경찰들이 집시 마을에서 보라를 탐문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집시들은 공권력의 사법정의 구현노력에 대해서는 시종 모르쇠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 일곱살 쯤 되보이는 집시 뽀이가 담배를 피면서 탐문 중인 유고슬라비아 경찰들을 노려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여기는 신경 끄는 게 좋아'라고 말하는 듯 하다. 

영화감독 알렉산다르 페트로비치Aleksandar Petrović는 당시 유고 영화계 블랙 웨이브의 기수였다. 티토 스스로가 영화광이다 보니 영화산업을 적극 후원했다. 덕분에, 유고 영화계에서는 한동안 '배달의 기수'류의 영화가 판을 쳤다. 페트로비치는 이 같은 조류에서 벗어나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과감하게 드러냈던 사람이다.

주연배우로 보라 역을 맡았던 사람이 유고산 국제스타 1호 베킴 페흐미유Bekim Fehmiu다.

추레한 모습을 벗어던진 베킴 페흐미유. 초기 헐리우드 진출작으로 캔디스 버겐Candice Bergen과 공연한 Adventurers(1970) 만 안 망했어도, 우리나라에까지 알려질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시가 아니라 코소보 알바니아계인 이 사람은 이 영화를 통해 국제적 스타덤에 올랐다.  그런데 이 양반, 잘 살다가 80년대 중반 이후 코소보 알바니아계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시작되자 베오그라드에서 사는 것이 불편해졌다. 1987년 결국 민족주의 정책에 대한 항의표시로 연극 공연 도중에 무대를 박차고 나간 뒤, 다시는 배우로 복귀하지 않았다. 2001년 잠깐 인터뷰에서 드러난 그는 유고슬라비아의 붕괴에 대한 지독한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렇게 은둔생활을 지속하다가 2010년 76세의 나이에 베오그라드 자택에서 권총자살을 택한다. 아내에게 적어놓은 편지에서 그는 '암만 생각해도 인생이 의미가 없어서...'라고 적었다. 정치가 애꿎은 사람 하나 잡은 셈이다.

1951년생의 또다른 주연 고르다나 요바노비치는 그 이후 딱히 출연작이 많지 않다. IMDB에서는 '수호천사'에서도 출연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1967년 그러니까 이팔청춘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만 보여주고 주섬주섬 사라졌다. 1999년에 죽었으니 오십이 채 안된 나이다.

어쨌거나 이 영화에는 가정폭력, 구타, 도벽, 주벽, 제도에 대한 거부 등 집시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런 가운데 영화제목을 '행복한 집시들 만났네'라고 붙였으니, 참 역설적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60년대는 유고슬라비아 최고의 전성기다. 경제적으로 풍족했고, 미국-소련한테도 꿀리지 않는 정치적 위상을 누리고 있었다. 이 영화는 그 거칠 것 없는 유고슬라비아에 어떤 장애가 도사리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집시들의 앤썸, 젤렘 젤렘은 환청과도 같이 지속된다.

영화 속의 젤렘 젤렘 노래부르는 장면. 집시 여가수 역을 맡아 노래를 부르는 올리베라 카타리나Olivera Katarina는 당시 유고 최고의 (섹시) 스타였다.  베킴 페흐미유의 자기파괴적 야성미가 잘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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